민중미술이 동시대미술로 변모…흐름과 현재를 짚다
한국 민중미술 특별전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
현실이 마주한 문제에 주목한 ‘민중미술’. 한국발 예술인 ‘민중미술’의 흐름과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전시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 민중미술 특별전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이라는 타이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5관에서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선보이는 전시다. 이 전시에서는 1부 아카이브전과 2부 동시대작가전 등 총 2부로 나눠 민중미술을 조명한다. 웹진ACC 이슈&뷰를 통해 이번 특별전을 들여다보았다.
민중이 주인공인 ‘민중미술’
예술은 상류층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동시대, 전공자들 마저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작품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소시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로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역사적으로 상류사회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이 번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 머릿속에는 어느새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며,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았을 터다.
그러나 알고 보면 오늘날 문화예술은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제 엄청나게 대단한 무엇보다는 우리의 삶 자체,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소중함을 알고 이것에 대한 가치를 조명할 줄 아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금, ‘민중미술’이 다시금 조명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1980년대 유신체제의 종말과 신군부의 등장으로 혼란한 가운데 등장한 민중미술은 역사적으로 타자였던 민중이 주인공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민중미술은 현실에 주목해 민중의 편에서 사회문제를 짚고 대중과 소통한 체제 저항적 성격을 띠었다. 미술이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시기 형성된 여러 소집단들은 문제의식과 활동 방식은 서로 달랐으나, 미술의 사회 참여로 예술과 삶의 간극을 좁힌다는 특성만큼은 같았다. 이런 특성 덕분에 한국의 독특한 현실주의 사조로서 ‘민중미술’(Minjung Art)이라는 용어를 고유명사로 사용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한국발 예술인 ‘민중미술’의 흐름과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전시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펼쳐지고 있어 의미가 깊다. 한국 민중미술 특별전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이라는 타이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문화창조원 복합전시5관에서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유관기관에 공간을 대관하는 형태로 민중미술 관련 전시를 선보인 것과 달리 이번 전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산을 들여 마련돼 기대감을 안고 전시장을 찾았다.
아카이브전 ‘새로운 시선’
아카이브전 ‘새로운 시선’에서는 민중미술사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긴 작가 10명의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 살펴본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기인해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제시한 민중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아카이브전과 동시대작가전 이렇게 총 2부로 나누어졌다. 아카이브전인 ‘새로운 시선’에서는 1980~1990년대 반독재와 민주화, 통일, 노동운동 등 주로 정치적인 주제를 표현한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2000년대 들어 민중미술의 고민을 이어간 포스트 민중미술도 함께 다뤘다.
민중미술을 다룬 서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오윤의 ‘낮도깨비’(1984)와 신학철의 ‘한국근대사-5’(1982)를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오윤은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기폭제가 된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 중 한 명이다. 그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따라붙었던 그의 도깨비를 실제로 보니 불합리한 사회 모순에 맞서 싸우는 민중의 전형을 떠올리게 했다.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신학철은 작품에서 작품에 일제강점기, 6·25전쟁에 이은 남과 북의 분단, 근대화와 산업화가 탄력을 받으면서 이뤄진 기형적 경제발전 등을 담아냈다.
이와 함께 민정기의 ‘숲을 향한 문 2, 5, 6, 7, 8, 9, 10’(1986), 임옥상의 ‘목포’(1991), 홍성담의 ‘북춤’(1986)도 볼 수 있었다. 책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외에 강연균, 조해준 작가의 작품도 전시됐으며 이어 민중미술이 기존과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관점에서 포스트 민중미술, 공공미술로 발전하며 이와 관련된 활동으로 낙산프로젝트와 대안공간 스페이스 빔의 활동도 소개되었다.
동시대작가전 ‘현실과 환상 사이’
동시대작가전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는 오늘날 사회 문제에 관심을 토대로 작업하는 작가 12명의 작품이 전시장에 걸렸다. 개인의 문제에서 시작해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문제의식을 확장시켜 나가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동시대작가전을 보기 위해 자리를 옮기니 아카이브전보다 훨씬 큰 공간이 나왔다. 동시대작가전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는 2010년대 이후 현실에서 문제의식을 찾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염병과 기후 위기, 환경오염 등 자연과 인간의 관계, 도시, 이주 노동자 등 삶의 터전의 문제, 정보화와 감시사회의 장단점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이슈를 여러 매체와 형식으로 보여준다.
튜브를 끼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화면 가득 채워진 조정태의 ‘군상’,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사용하기도 하는 검은 비닐봉지를 이리저리 구겨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처럼 연출한 이진경의 ‘몽유도원도’, 1991년 발발한 걸프전이 TV로 실시간 전파를 탔던 것을 소재로 한 노현탁의 ‘코로스, 휴브리스, 아테’, 가짜 뉴스가 남발되고 자극적인 온라인 마케팅 산업을 BJ 방송으로 보여주는 류성실의 ‘BJ 체리장 2018. 04’ 등을 만날 수 있었다. 또 이세현의 ‘경계 오름’, 문소현의 ‘공원 생활’ 뿐만 아니라 나현, 박상빈, 박은태, 이원호, 임용현, 류나리 작가의 작품도 출품되었다.
동시대작가전을 아카이브전에 비해 상당히 방대한 공간을 할애한 것은 다루어야 할 여러 사회 문제로 인해서일까. 현실을 살아내는 창작자의 치열한 고민과 그 활동의 결과물이 끝날 듯 끝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문 것처럼 여러 공간을 걸쳐 다루어졌다.
사실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이라는 전시 타이틀은 전시를 관람하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전시를 다 감상한 뒤에야 파악할 수 있었던 의미는 해답을 찾기 힘들 정도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가리키는 다면체 미로, 진동은 이러한 현실 속 예술가들의 활동이 시도로 작용한다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아카이브전과 동시대작가전은 당면한 것들을 한 가지로 딱히 정의 내리기 힘든 동시대 미술이 현실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민중미술이 그 시발이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현대사회 속 여러 주제들을 다룬 동시대 미술이 민중미술을 이은 것이라는 시각을 보여주는 전시…민중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유익했던 시간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민중미술이 제도권으로부터 처음 조명 받았던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 15년: 1980-1994’이 떠올랐다. 도록으로 접한 이 전시는 15년 공안의 민중미술 궤적을 돌아보고 그 예술적 성과에 주목했다. 이듬해인 1995년 광주비엔날레 개최 준비에 대한 반발로 광주·전남 미술인 공동체가 주축이 된 안티 비엔날레의 성공은 전국 민중미술단체와 뜻을 같이한 미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이룬 결과였다. 그 뒤 광주비엔날레와 광주시립미술관은 광주 정신을 매개로 민중미술을 조명하는 전시를 종종 열어 왔고 매년 5월이 다가올 때마다 미술인들은 똘똘 뭉쳐 광주의 민중미술 나아가 민중미술이 어떻게 현시대 후속세대로 이어져오고 있는지를 전시로 보여줬다.
이러한 행간 속에서 이번 특별전은 현실을 직시해 미술로 사회에 참여한 민중미술이 동시대 예술로 파이가 커졌다는 것을 증명했다. 현대사회 속 여러 주제들을 다룬 동시대 미술이 민중미술을 이은 것이라는 시각 말이다.
앞으로도 이번 특별전처럼 여러 시각으로 민중미술을 바라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이브전이 민중미술을 담아내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기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민중미술을 조명하는 또 다른 자체 전시를 만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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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김태영
- kty_0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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