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식히는 하늬바람, 《하늬풍경》

2023 ACC 야외전시

기후 위기를 넘어

기상청이 발표한 올해 여름철(6~8월) 기후분석 결과에 따르면 기나긴 무더위와 기록적인 폭우가 함께 했던 이번 여름 우리나라 전국 평균기온은 24.7도로 평년보다 1도 높아졌고, 폭염 일수와 열대야 일수는 각각 13.9일과 8.1일로 평년(10.7일, 6.4일)보다 많았다. 여름철 3개월 모두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던 해는, 기상청이 전국으로 관측망을 확충한 1973년 이래, 51년간 올해를 포함해 총 3번뿐이라고 한다. 우리가 체감했듯이 정말 너무나도 더운 여름이었다.

더위와 함께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보다 291.2mm 더 내렸고, 장마철 강수량은 660.2mm로 1973년 이래 3번째로 많은 양이었다. 특히 남부지방 장마철 강수량은 역대 1위인 712.3mm를 기록했고, 7월 14일 하루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전북 군산과 경북 문경은 일 강수량 극값 1위를 경신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한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더해지며 많은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더위의 문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기상기구는 “지구는 역사상 가장 더운 3개월을 보냈다”라며, 지난 8월은 사업화 이전 대비 기온이 1.5도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1~2도가 그렇게 심각한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생각할 때 쉽게 내 몸에 대입해 생각해 보라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 인간의 평균 체온은 36.5도, 평균 체온보다 1.5도 오른 38도 이상이 되면 고온에 따른 두통과 근육통, 어지럼증 등이 발생하고 몸을 쉽사리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지구는 아마도 지금 견디기 어려운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올여름의 더위 통계에 따르면 평균기온 역대 4위로, 우린 가장 더운 여름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체감한 더위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유엔(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리 행성은 기록상 가장 더운 여름을 견뎌냈고, 기후 붕괴는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붕괴의 시대에 《하늬풍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까?

예술로 모색하는 기후 위기 시대의 현재와 미래

2023 ACC 야외전시 《하늬풍경》은 무더운 여름철 불어오는 서늘하고 건조한 서쪽 바람인 ‘하늬바람’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각을 암시하며 기후 위기를 당면한 동시대인들의 인식을 환기할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을 제시한다. 한국, 일본, 중국의 작가 11팀/인을 초대해 소방도로와 하늘마당 미디어큐브의 미디어파사드 작품과 함께 야외조각 작품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보여준다.

우리 앞에 도래한 환경파괴를 인식, 성찰하고 기후 위기 시대의 미학적 실천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번 전시는 전당의 야외공간을 원경, 중경, 근경이 공존하는 한 폭의 그림으로 바라보며 기후 위기 시대의 풍경을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연 그대로의 풍경, 인간에 의해 변해가는 풍경,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라는 3가지 소주제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설치미술, 영상, 업사이클링 가구 등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

멀리서 본 풍경인 원경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소주제로 일본의 드리프트 콜렉티브와 한국의 이이남이 참여했다. 소방도로에서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상영되는 두 미디어 작품은, 떠다니는 유빙의 모습과 일월오봉도를 통해 기후 위기 이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 자연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두 번째 파트인 중경은 인간에 의해 변해가는 우리 주변의 풍경을 통해 인간의 개입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새로운 풍경을 재해석했다. 박훈규+이선경, 서울익스프레스, 스튜디오 1750, 펑지아청이 참여한 중경은 하늘마당 미디어큐브와 아시아문화광장 나무 그늘 쉼터 등에 전시되어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돌연변이, 유전자 변형 등에 대한 예술적 풍경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풍경을 제시하는 근경은 김하늘, 박천강, 김남주+지강일, 삶것, 한석현의 작품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동시대의 방식과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하늘마당 그랜드캐노피 아래에는 다량의 건축폐기물을 만들어 내는 임시 파빌리온의 대안을 탐구하는 박천강의 작품과, 폐마스크 원단으로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인 김하늘의 오가닉 시리즈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배롱나무 숲 위 열린마당에는 김남주+지강일이 ‘부드러운 구상’을 통해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미래 건축에 대해서 질문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시아문화광장에는 삶것의 ‘원심림’이 무겁고 비싼 반환경적 재료를 거부한, 바람의 세기에 따라 변화하는 새로운 지붕의 모습으로, 가구로 사용되다 버려진 목재를 모아 다시 나무의 형태로 만든 한석현의 ‘다시, 나무’가 미래의 풍경에 대한 상상력을 예술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하늬바람 따라 ACC 가을 산책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무더위가 가시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8월 말 처서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연일 이어지는 폭염경보로, 올해는 이른바 ‘처서 매직(처서(處暑)+Magic(마법)을 뜻하는 합성어)’도 없을 거라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처서 전날 비가 내렸고 처서가 지난 저녁 우리는 건조하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느꼈다.

9월 14일부터 11월 19일까지 열리는 《하늬풍경》은 여름의 끝을 재촉하는 시원한 ‘하늬바람’에서 전시 제목을 가져왔다. ‘하늬’는 뱃사람의 말로 서쪽을 뜻하며 하늬바람은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을 말한다고 한다. 올여름 특히 우리를 괴롭혔던 습하고 무더운 바람을 밀어내고 불어오는 하늬바람은 말 그대로 상쾌하게 우리를 가을로 데려간다. 덥고 습한 바람을 몰아내는 하늬바람처럼 자연이 우리 모두에게 이롭게 계속해서 제대로 작용할 수 있도록, 이번 전시를 통해 ACC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가을이라는 계절이 가진 시원함에 감사하고 기후 위기에 대해 사색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아시아문화광장, 소방도로, 하늘마당, 그랜드캐노피, 하늘마당 미디어큐브, 열린마당 등 ACC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늬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생각보다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하고, 미디어 작품의 경우 상영시간을 확인해야 놓치지 않고 전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현재 하늘마당 미디어큐브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박훈규+이선경의 ‘마지막 추모비’는 오전 10시에서 11시,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만날 수 있고, 서울익스프레스의 작품은 10월부터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전시 참여 작가인 드리프트 콜렉티브와 함께 작품 제작 과정과 지구인들에게 유빙이란 무엇인지 알아보는 아티스트 토크가 11월 8일에 마련되어 있어, 좀 더 적극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면 참여해 보길 권한다. 이외에 전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상영시간 등이 궁금하다면 ACC 누리집을 방문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by
임우정 (larnian_@naver.com)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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