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바바뇨냐: 해항도시 속 혼합문화

예술적 항해로 경험하는 아시아의 도시문화

전시, 그 새로운 항해 앞에 서다.

분명 전시장 입구를 찾았는데, 지금 내가 선 곳은 바다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하는 선박 입구이다. 전시장을 찾아오기까지의 소란함과 분주함이 새로운 공간으로의 전이를 앞두고 잠시 숨 고르기를 권유한다. 그래. 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낯선 경험의 항해를 떠난다. 선박 입구를 통과하여 잠시 어둠을 타고 왼쪽으로 돌아나가니 새롭고도 낯선 세계가 드러난다.

배 앞머리에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니, 눈 아래 세 개의 다른 공간이 보인다. 양옆으로 웅장한 파도 소리와 함께 거대한 바다가 밀려오고 밀려간다. 배 앞머리에서 전시관 전체를 조망해 보자. 이 바다 너머 우리 앞에 과연 무엇이 놓여 있을까. 앞으로 만나게 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그 옛날 비행기도 철도도 없던 시절에, 세계의 통로이자 주 무대가 바다였던 시절이 있었다. 새로운 항로를 통하여 바닷길을 통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아시아와 유럽 등이 연결되고 물건과 사람이 교류하고 혼합되었고, 도시의 번영과 함께 독특한 혼합 문화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지금 아시아의 주요 항구 도시인 인도의 코치,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중국의 취안저우를 방문할 것이다. 그곳에 가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까,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과 문화가 있을까.

인도 코치 <황금빛 여정> 속으로

첫 번째 도시는 인도의 코치다. 코치는 인도 향신료, 그 시대에 검은 황금으로 불렸던 ‘후추’와 ‘정향’ 등 무역의 중심지로서 2,000여 년 전부터 무역을 위해 아랍인, 유럽인, 아시아인들이 교류하였다.

이러한 코치의 무역 시장에 영감받아 오마 스페이스(OMA SPACE)는 <황금빛 여정>이라는 작품을 창작했다. 삼베 원단 위로 소용돌이 치는 듯한 매력적인 황금빛 바람이 분다. 황금빛 벽 안쪽으로 들어서니 음악과 함께 독특한 향이 느껴진다. 후추와 강황 즉 향신료를 상징하는 검정과 노란색 가루가 색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중앙에는 원뿔형의 황금빛 오브제가 설치되어있다.

또 신비한 황금빛의 움직임과 오브제, 소리 속에서 하나의 신전을 경험하는 듯하다. 관람객은 공간에 잠시 앉아 ‘검은 돌’을 통해 특별한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감각 경험과 정신의 황금빛 여정을 경험케 된다.

코치에는 여전히 전통 힌두교 문화와 중국,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문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영상으로 코치를 둘러본 후, 인도 서남부의 전통미술로서 부와 행운의 여신을 맞이하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나만의 랑골리 만들기’를 디지털로 체험해 볼 수 있다.

말라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물길을 따라

두 번째 도시 말라카에 도착했다. 말라카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이어주는 가장 가까운 바닷길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아주 작은 어촌 마을이었으나, 15세기 중국 명나라 정화의 역사적 기여로 해상왕국으로 발전,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

<Water Odyssey: 물길> 작품은 이러한 말라카 물길의 특성에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다. ‘물’을 주제로 오랫동안 회화 작업을 해온 송창애 작가와 새로운 디지털 기술, 미디어가 어우러져 관객이 참여하여 바닷물 길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선사한다. 관객은 직접 달을 향해 손(센서)을 휘저으면 즉흥적인 물길 형태의 드로잉이 생성되고, 이것은 미리 프로그래밍이 된 작가의 나뭇잎 드로잉과 결합한 ‘물꽃 씨알’ 이미지로 변환된다. 자신이 만들어낸 ‘물꽃 씨알’이 자신이 서있는 거대한 물에 파동을 일으키고 사운드와 함께 휘몰아치듯 새로운 형태들로 변화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을 작가는 자기 내면을 비추는 행위에 비유하지만, 내게는 미지의 바다로 모험을 떠나는 인간의 위대한 여정, 그 불확실함과 역동성을 경험하는 듯하다.

말라카에는 중개무역을 위한 중국인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현지 여성들과의 혼인들 통해 ‘페라나칸(Peranakan)’이라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바바뇨냐’가 곧 그들이다. ‘바바뇨냐’의 뜻은 말레이시아로 온 중국 남성과 말레이시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남성을 ‘바바(Baba), 여성을 ’뇨냐(Nyonya)’라고 부른다. 말라카 왕은 무역을 이끌던 이슬람 상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종교를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이렇게 말라카에 유입된 아시아와 유럽의 다채로운 문화 요소는 현지인들의 일상에 그대로 수용되어 현재에 이르러 2007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말라카 여행의 마지막은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인 ‘바바뇨냐와 사진찍기’ 체험이다. 바바뇨냐의 결혼사진을 1명 또는 2명이 사진을 촬영하고 나면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사진이 합성되고 QR코드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여 사진을 다운받을 수 있다.

취안저우,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천년 도시

박근호(참새) 작가의 <무역 감정>은 중국 취안저우에 관한 작품이다. 취안저우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서 ‘동방 제일 무역항’이라 평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아시아에서 바다 무역의 출발점이었으며 세계에서 큰 항구도시 중 하나였다. 취안저우 항구 입구에 있는 진차이산에는 불상 형태의 육승탑이 있다. 이 육승탑은 취안저우를 향해오는 배에 취안저우를 안내하는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무역 감정> 작품은 큰 바다를 항해하는 듯한 전시장 안에 항해의 표지이자, 길을 안내하는 빛의 기둥으로, 등대와 같은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크리스털 비즈와 철 프레임, 모터, LED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취안저우에서 활발하게 무역할 때 다루었던 물품 향신료, 후추, 비단, 보석 중 하나를 선택해 기둥 안에 있는 탁자에 올려놓으면, 사물이 품어내는 빛의 에너지와 파장을 볼 수 있다. 크리스털 비즈가 움직이며 빛의 산란을 일으키는데, 어둠 속에서 관객은 신비한 소리와 함께 빛의 기둥을 보는 듯 매료된다.

취안저우는 일찍부터 여러 지역 사람의 왕래로 문화공존의 특징을 보여주는 다양한 종교 건축물이 남아있어, ‘세계 종교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유네스코는 아시아 해상 교역로의 중심이자, 번영을 이뤘던 취안저우의 도시 환경적 가치를 인정하여 202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 공간에서는 <무역 감정>을 꼭 체험해 보길 권한다.

디어 바바뇨냐: 바바뇨냐에게 보내는 편지

세 개의 아시아 해항 도시를 창제작 현대미술과 도시 영상,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나오는 출구에서 관객은 ‘바바뇨냐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도록 권유받는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상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관은 말했다.

“기획자로서, 관객들이 남긴 바바뇨냐에게 보내는 편지가 매우 소중합니다. 바바뇨냐라는 말이 어렵고 생소할 수 있습니다만, 어떤 관객은 ‘바바뇨냐처럼 나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글과 또 그런 다양한 그림들을 남겨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전시의 핵심을 이해해 주셨구나,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구나 그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음 기획을 위한 중요한 피드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바바 또는 뇨냐가 될 수 있고, 이미 되어있거나 혹은 융합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또 다른 바바뇨냐일 수 있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서로 다른 나라, 도시와 문화, 사람들의 어울림, 그 혼합문화 속에서 공존과 상호 존중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23년부터 ‘아시아의 도시문화’를 대주제로 연구하며, 창제작 전시를 지속해서 준비해 왔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의 해항도시 속 혼합문화’라는 난해할 수 있는 주제를 디지털 및 미디어 인터렉션, AI, 현대미술 설치 등 창제작을 통해 작품과 관람객, 주제와 관람객 사이의 몰입과 소통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낸 전시이다. 또한 ‘바바뇨냐’라는 생소한 용어를 우리 일상에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어울림과 공존’이라는 혼합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인 점, 또한 ‘항해’라는 전체 큰 전시 구조를 통해 관객들에게 더 쉽게 의미와 주제를 구성해 간 점이 이번 전시의 큰 성과라 볼 수 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람객을 포함하여, 누구나 흥미롭게 참여하고 느끼고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1관에서 2024년 6월 16일까지 진행된다.

by 천윤희
uni94@hanmail.net
사진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ACC 제공
문화 전시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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