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 지음》 도시의 경관: 연결과 공존

닿고 잇고 쌓음으로 함께 지어가는 세상 ‘공존’의 가치를 예술적으로 사유하다

이 세상에 온전히 단독자로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이나 물질이 있을까? 사람과 동물, 식물, 크고 작은 생명이 어우러진 자연 생태계에서 모든 존재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물질세계는 어떨까? 원자부터 원자핵과 전자,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가장 작은 입자로 알려진 쿼크까지…. 오랜 세월에 걸친 과학자들의 끈질긴 연구에도 지금까지 단독으로 존재하는 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그저 인문학적 사유가 아닌, 과학이 증명하는 셈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떠나 함께 공존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 시대에 더없이 필요한 공존의 가치를 예술적으로 사유하고, 가슴 깊이 새겨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National Asian Culture Center/이하, ACC)에서 마련됐다. ACC 융복합 콘텐츠 전시 《이음 지음》. 제목 그대로 서로 이어짐으로써 지어져 가는 삶의 본질을 건축의 공존성을 모티브로 풀어낸 전시다. 재료가 서로 닿고, 이어지고, 쌓여서 지어지는 건축처럼 우리의 삶도 서로에게 닿고, 이어지고, 관계를 쌓아가며 짓는 것이라는 은유를 담고 있다. 올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핵심 주제인 ‘도시문화’를 구현해 낸 전시이기도 하다.

한국, 프랑스,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독일, 스위스, 스페인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현대미술가들이 19점의 작품을 통해 저마다가 생각하는 공존과 어울림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해 12월 22일 개막한 이후 두 달여 만에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니 더욱 궁금해진다. 과연 건축으로 풀어낸 공존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이음 지음》 전시를 총괄 기획한 이상현 학예연구관과 함께 전시관을 찾았다. 어떻게 접근하면 전시를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을지 주제에 대한 친절한 안내부터 들을 수 있었다.

이상현 학예연구관/ ACC 전시기획과
“전시 주제가 4개의 대주제로 구성이 돼요. 첫 번째는 ‘닿다’인데요, 재료와 재료들이 서로 맞닿아서 뭔가 시작할 수 있는 의미의 ‘닿다’입니다. 그리고 닿아진 재료들이 이어지는 ‘잇다’, 세 번째는 이어진 재료들이 한층 한층 쌓여 올라가는 ‘쌓다’. 그리고 네 번째가 ‘짓다’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건축물이 지어지는 모습을 각각의 대주제로 잡았습니다.”

“닿다-나에게 닿다”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압도적인 크기의 미디어 영상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묘한 기대를 품게 한다. 거대한 문의 형상을 한 스크린 위에, 한국의 전통 건축과 현대적 건물들이 뒤섞이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어떤 건물은 어지러울 정도로 일부분만 확대되면서 과장되어 드러나기도 하고, 위아래 오른쪽 왼쪽이 교차하여 대칭을 이루기도 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조영각 작가의 작품 <병렬울림>으로 생성 인공지능을 이용해 이 시대의 건축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인공지능의 시선으로 바라본 건축 공간의 형이상학적인 모습을 통해 작가는 넌지시 질문을 건네온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인공지능이 바라본 세상, 과연 어떤 것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있는지…. 인공지능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어쩌면 통제해 가고 있는 요즘,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질문임이 틀림없다.

조영각 작가
“사람들이 사는 공간은 ‘모름지기 이렇게 표현되어야 한다’라는 걸 인공지능이 한 번 더 해석해 본 거죠.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병렬울림이라는 텍스트는 인공지능과 인간, 또 인공지능과 건축, 이런 대상들이 같이 공존하는 세상에 관해서 연구한 결과입니다.”

“잇다- 우리를 잇다”

거대한 문을 통과해 전시장에 들어서면 색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커다랗고 푸른 수조 위에 하얀 그릇들이 물결을 따라 떠다닌다. 서로 다른 크기의 자기 그릇들은 물의 흐름에 따라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살짝살짝 부딪히기도 하면서 은은한 울림을 만들어낸 한편의 아름다운 연주회를 보는 것 같다. 연못 주변의 벤치에 둥글게 앉아있는 관람객들마저 작품의 일부인 듯 조화로워 보인다.

프랑스 출신의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 작가의 작품 <클리나멘 v.9>이다. <클리나멘>은 로마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의 시에서 인용한 말로, ‘원자들의 예측할 수 없는 이동’을 뜻한다. 예측할 수 없는 그릇들의 만남을 통해 아름다운 화음이 만들어지듯이 우리 삶도 서로 맞닿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일어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는 오늘 누구와 만나 어떤 화음을 만들어냈을까? 작가는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며 그릇과 물의 화음에 귀 기울여보길 권한다.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 작가 (프랑스)
“이 작품은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천천히 앉아 여기에서 잠시 머무를 수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이 작품의 일부입니다. 방문자가 앉아서 작품을 감상하며 몽환에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쌓다- 대화를 쌓다”

날개 달린 집과 나무들이 하늘 위에서 떨어진다. 떨어진다기보다는 목표를 향해 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목적지는 지구를 상징하는 다트판이다. 집과 나무들이 화살이 되어 지구라는 다트판에 꽂히려고 날아가는 중이다. 과연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카도 분페이’ 작가는 지구상의 사람들이 자기 집과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이 마치 ‘다트 게임’ 같다고 얘기한다.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불가피하게 개발과 파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다트 게임이 끝난 이후 지구는 어떤 모습일지, 머지않은 미래를 잠시 상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카도 분페이 작가 (일본)
“도시 인구가 너무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주거 공간은 더 이상 집 지을 공간이 없어 점점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좁아지고 있는 상황은 단순히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관람객들도 주거환경, 환경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온통 새하얀 공간이 눈길을 끈다. 순백의 공간이 마치 비밀의 화원에 들어선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말레이시아 출신 ‘파멜라 포 신 탄’ 작가의 작품 <에덴>은 식물의 DNA 내부를 아크릴과 크리스털을 이용해 형상화해 냈다. 아치형의 통로에는 덩굴이 자라나 있고, 아치를 지지하는 기둥들은 고대 나무의 뿌리처럼 보인다. 덩굴에 매달려 있는 크리스털 유리구슬은 나무 잎사귀 끝에 맺힌 물방울 같다.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식물의 DNA 속을 직접 거닐고 만지고 관찰하다 보면 작은 것들의 위대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완벽하게 연결된 식물의 DNA처럼 사람과 사람, 또 사람과 자연도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그 순간이 바로 ‘에덴’이 아닐까? <에덴>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파멜라 포 신 탄 작가 (말레이시아)
“인간이 자연과 연결되었음을 느끼는 방식과 어떻게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지의 측면에서 자연 생태계를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식물의 DNA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봤는데요, 자연의 경이로움을 이해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짓다- 꿈을 짓다”

하나하나의 재료가 서로 닿고 또 다른 대상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이 쌓이면서 새로운 건축물이 지어진다. 건축물을 짓는 것은 우리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기에, 우리의 삶을 짓는 일이며 꿈을 짓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지음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때 가능하다. 《이음 지음》의 마지막 주제 영역인 ‘짓다-꿈을 짓다’에서는 함께 지어가는 세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 ‘아즈마 코이치로’ 작가의 <무한차륜>이다. 56개의 자전거 바퀴를 연결해서 만든 설치 작품으로, 사용된 바퀴는 모두 버려진 자전거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바퀴의 절반은 일본에서,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모아왔다. 페달을 밟으면 56개의 바퀴가 실제로 움직이는 체험을 직접 해볼 수도 있다. 바퀴 하나, 작은 나사 하나만 어긋나도 전체의 움직임이 틀어지는 작품처럼 우리 사는 세상 역시 그렇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할 때 세상도 자전거처럼 잘 굴러간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건축을 소재로 ‘공존’과 ‘연결’의 주제를 구현해 낸 ACC 융복합 콘텐츠 전시 《이음 지음》. 지금까지는 《이음 지음》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 닫고 있던 관계의 문을 열고 누군가와 이어지기로 마음먹었다면 우리의 삶에 일어날 마법 같은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음 지음》에서 시작해 보길 바란다. 《이음 지음》 전시는 오는 7월 21일까지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2관에서 열린다.

  • 이음 지음 전시를 더욱 즐겁게 즐기는 방법?

    이상현 학예연구관/ ACC 전시기획과

    “작품 하나하나가 매력이 있긴 하지만 이 전시관 전체를 하나의 도시라고 생각하고 전시를 관람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영상 보고 작품 보고 하나하나 체험하고 끝이 아니라 왜 ‘이음 지음’일까, 전체적인 주제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을까라고 하는 ‘왜(Why)’라는 물음표를 가지고 들여다보시면 생각지 못한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by 유연희
heyjeje@naver.com
사진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ACC 제공
예술 전시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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