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변형 극장 블랙박스에서 펼쳐지는 신비한 세계

2024 ACC 신비한 극장

많은 것이 디지털로 대체되는 시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알고리즘을 경험할 때면 섬뜩한 생각도 든다. 우리는 디지털이 없는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사람을 대면하는 시간보다 SNS, 인터넷 등 디지털을 대면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그러는 사이 알고리즘이 생성하는 무한 정보들에 의해,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많은 것을 박탈당하고 있다. 우리의 자유의지, 정신, 사고까지, 우리가 빼앗기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문제다.

우리가 디지털 기계를 놓을 때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인류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다. 우리는 원래 자연에 있었다.

잠깐 멈춰 서서 디지털 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 더 나아가 디지털 세계와 한걸음 떨어져서 모든 것이 사라진 고요한 대자연에 나 혼자 남겨지는 상상을 해보자. 그곳에서 고독한 진짜 ‘나’를 마주해보는 것이다.

<신비한 극장> The Gobi : 자연을 대면하는 새로운 방법

2024 <신비한 극장>은 엄청난 정보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 한 번쯤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서 자연 속에서 자연이 주는 숭고함과 인간 본연의 고독을 경험하고 진짜 ‘나’를 되돌아볼 시간을 제안한다. 

올해 <신비한 극장> 연출을 맡은 신현필 연출가는 “디지털 사회와 알고리즘이 편향된 수많은 정보 속에 가려져 있던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깨우고 내면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고비’라는 주제는 그가 몽골 고비 사막을 여행했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

디지털 장비 없이 온전히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 반짝이는 별들과
그곳에 존재하는 고독한 나. 그 시간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신현필 연출가 -

그럼, ‘신비한 극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관객은 모든 외부 정보가 차단된 사막처럼, 일상과 차단된 블랙박스 극장 공간에 고립되어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블랙박스 극장에 들어서면 고비 사막을 연상시키는 하얀 소금이 바닥에 넓게 깔려있다. 그 위로 무용수의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프리셋’ - ‘알고리즘의 바다’ – ‘진동, 모래지옥’ – ‘순례, 별의 사막으로’ - ‘각성의 태양’이라는 다섯 개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대자연과 인류의 시작, 문명의 발달과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디지털 세계로의 전개가 오버랩되는 것 같았다. 관객의 시각이 미치는 전체 공간이 미디어아트, 레이저, 조명, 사운드로 채워져 감각을 자극하고 스펙터클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잇따라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굉음. 우리는 하늘 위로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서 별의 궤적을 만난다. 거대 시스템과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탐색하는 시간이다. 진짜 세계에 접속하여 내면에 귀 기울이는 일.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시간일 것이다.

블랙박스 공간의 재해석, 새로운 가능성

ACC에서 기획한 <신비한 극장>은 같은 이름으로 2023년부터 시작해 올해 두 번째 시도하고 있는 공연이다. 올해 연출은 신현필 연출가가 맡아, 몽골 고비를 주제로 융복합 공연을 구상하고, 제작은 ACC가 직접 참여했다. 특히 ACC 무대기술팀에서 물리적인 공간과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활용하여 기술적으로 최대한 구현했다.

예술극장에 있는 ‘극장1’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아시아 최대 규모, 24.03.14. 보도자료 기준) 블랙박스 극장으로, 공연의 성격에 따라 공간을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를 살짝 낮춰서 소금사막을 만들거나, 무대를 올려 산언덕을 만들고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등 가변형 극장이 가진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것이 무대 기술감독을 맡은 임종민 사무관의 설명이다.

공연을 볼 때 관람객은 지정석에서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자유롭게 바닥이나 구조물에 앉아서 관람할 수 있고, 앉은 방향에 따라 각각 조금 다른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프로젝션과 레이저 포인팅, 조명 등을 통해 공간 전체가 무대가 되어,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관객이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서 작품 안에서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번 공연에 사용된 ‘이머시브 사운드(Immersive sound)’는 공간성을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 극장의 왼편과 오른편에 60개의 스피커가 숨겨져 있어 소리가 360도에서 퍼져나간다. 입체적으로 공간을 채움으로써 공간감을 극대화하고 몰입감을 높인다. 이머시브 사운드뿐만 아니라 음악, 미디어아트, 조명, 레이저, 무대장치 등이 조화롭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구성됐다.

우리는 디지털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을까?

한편으론,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 한걸음 떨어져서 자연을 마주하는 경험을 하는데 그것마저도 디지털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연출가가 밝혔듯, 디지털 시대, 알고리즘 홍수 속에서 ‘자연을 만나는 다양한 방법’을 성찰해 보는 시도로서, <신비한 극장>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진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3월에 막을 내린 <신비한 극장>은 8월 2일~3일에 추가 공연을 진행할 예정으로 3월 공연 관람을 놓치신 분들은 8월에 만나보시길 바란다.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사진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예술 공연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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