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명이 몰린 인문학 1번지

2024 상반기 <ACC 인문강좌>

AI가 활약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3월 27일 수요일 진행되는 2024 ACC 인문강좌 취재를 앞두고 전당 누리집을 찾았다. 총 4회로 진행되는 상반기 인문강좌의 참여 가능 인원은 회당 200명이었고, 참여 가능 인원이 많은 만큼 신청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신청 인원 200명이 꽉 차서 대기인원으로 신청 가능하다는 안내를 보며 적잖은 당혹감을 느꼈다. 물론 전당의 취재 협조로 사전 신청 없이도 참여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인문 강좌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높다니,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전당으로 이끌었을까?

매년 새롭게 그해의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트렌드 코리아 2024』(작가 김난도 외, 미래의창)는 올해 대한민국 소비 풍경을 이끌 10대 키워드를 분초 사회,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us), 육각형 인간,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 도파밍(Dopaming), 요즘 남편 없던 아빠, 스핀 오프(Spin-Off) 프로젝트, 디토(Ditto) 소비, 리퀴드 폴리탄(Liquid Politan), 돌봄 경제로 꼽았다.

‘분초사회’는 1분 1초가 아까운 세상 ‘시간의 가성비’가 중요해지며 볼 것, 할 것, 즐길 거리가 많아진 만큼 초 단위로 변화하는 플랫폼 경제에서 시간도 주요 재화이고 사람들의 눈길을 잠깐이라도 사로잡기 위해 다투는 현시대를 상기한다. 인기인 콘텐츠들을 잠깐 생각해 봐도 길이가 짧은 숏폼이 대세다. 이는 ‘도파밍’과도 이어진다. 도파민 중독, 도파민 도는 일을 찾는 현대인들은 재미를 모은다는 의미에서, 도파민(Dopamin)과 게임 아이템을 모으는 파밍(Farming)이 합쳐진 도파밍(Dopaming)을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내 뇌에 도파민을 돌게 해줄 매력적인 재미를 찾는 일이 일상이다.

이렇게 자극적인 숏폼이 넘쳐나고 분초 단위로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미리 사전 신청을 하고 늦지 않게 전당을 찾은 사람들이 있다. 빠르게 변하기보다 이미 오래전 떠난 철학가의 이야기에 90분의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고자 하는 강연의 주제는 ‘쇼펜하우어의 행복하게 사는 법’, 강연을 찾은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행복’을 찾아 이곳에 왔을까?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이란

쇼펜하우어는 1788년 독일에서 태어난 철학자이다. 그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고, 염세주의를 쉽게 설명한다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하고 후회하며 사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부정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임에도 삶에 대한 집착이 컸고 1860년 9월 눈을 감기까지 72세의 나이로 장수한 철학가이다. 자신도 자살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도 장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쇼펜하우어는 영원히 살고자 하는 불가능한 인간의 욕망이 우리의 인생을 기본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삶을 어떤 목적이 있어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루하루 더 살고자 하는 충동에 떠밀려 산다고 말한다. 이성보다는 인간의 본능을 강조하는 그는 우리의 인생을 기관사 없이 동력에 의해 이끌려 달리는 기차와 같다고 말하며 그러므로 사람이 가진 삶에 대한 의지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우리가 선과 악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자신의 철학을 장수로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살아야 하는, 떠밀려 사는 고통스러운 삶을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쇼펜하우어는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그는 우리 삶에서 불행의 원인으로 고통과 권태 두 가지를 꼽았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결핍뿐만 아니라 충족 또한 고통을 가져오며, 인생을 결핍의 고통과 충족의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에 비유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는 다수의 OTT를 구독하고 있다. 하지만 구독하지 않는 채널의 독점 콘텐츠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구독하는 채널에서는 뭘 봐야 할지 몰라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볼만한 콘텐츠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에 결핍되어 있고 무엇이 충족되어 있을까?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각자 자신의 개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즐거움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세대는 ‘참지 않는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 어쩌면 요즘 사람들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을 위한 조건을 그 누구보다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는 ‘더러워도 참아야지’ 했다면 요즘은 자기 행복을 위해 참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과거에는 기피되었던 다양한 직업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알려주는 행복의 지침이 많지만 결국 그는 그 중심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스스로에게 두는 것을 강조한다. 행복의 참된 원인은 밖이 아닌 우리 안에 있고 타인이 만들어낸 기준인 출세, 승진, 명예, 부와 같은 것보다는 무게 중심을 내 안에 두고 예술, 문학, 철학 등을 가까이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확고히 만들어가길 권하고 있다. 수요일, 전당을 찾은 사람들은 자기만의 취향을 슬기롭게 만들어가며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ACC 인문강좌 즐기기

문화예술을 매개로 참여자들이 사회, 아시아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고 능동적인 문화 향유자로서 성장하는 발판이 되길 기대하며 마련된 ACC 인문강좌는 문화예술, 인문학 등 다분야 전문가를 초청한 대중 강연 프로그램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ACC의 핵심 테마인 ‘도시’와 ‘문화’를 철학, 미술, 고고학, 미국사를 매개로 살펴볼 수 있는 강연이 참여자들의 도시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지적 욕구를 만족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3월 27일 수요일을 시작으로 6월까지 매달 마지막 수요일 저녁 7시 문화정보원 극장3에서 진행되는 ACC 인문강좌 상반기 프로그램은 앞으로 총 3회가 남아있다. 4월 24일 두 번째 강연은 정우철 도슨트의 ‘화가가 사랑한 빛’을 주제로 살아있는 빛의 움직임을 포착하고자 한 인상주의 화가 모네와 르누아르의 작품을 스토리텔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5월 세 번째 강연은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분야인 고고학으로, 발굴된 물건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번영과 몰락의 경계를 넘나들며 희로애락의 인간사를 이해할 수 있는 경희대학교 강인욱 교수의 ‘세상의 기원을 찾아가는 고고학 여행’, 6월에는 이민자의 나라, 다문화주의 나라,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의 메카로 자리 잡은 미국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뉴욕, 시카고, 라스베이거스의 도시 역사를 통해 조명해 보는 전남대학교 김봉중 교수의 ‘세 도시로 읽는 미국사’

매회 약 90분가량 진행되는 본 강연은 전당 누리집을 통해 선착순으로 참여자를 모집, 회당 200명이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무료 강연이다. 전당으로 직접 찾아가기 어렵거나 선착순 신청이 마감되었을 경우 전당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강연에 참여할 수 있고 현장 및 유튜브 라이브에서 수어 통역이 제공되니 참고하길 바란다.

앞서 언급했듯 ACC 인문강좌의 인기로 선착순 200명에 들지 못할 수도 있으니 빠르게 일정을 확인해 사전 신청에 성공하길 바라며, 남은 세 번의 강연이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





by 임우정
larnian_@naver.com
사진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문화 인문학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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