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

아시아문화칼럼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동화 중 하나가 『천일야화』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 소원을 척척 해결해주는 램프의 요정, 고래와 커다란 새 로크를 만나는 모험에 열광했던 어린 아이들이 자란 뒤 자신의 자녀들에게 읽어주는 책이 바로 『천일야화』다. 그러나 그걸로 『천일야화』를 다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천일야화』 에 관한 사실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1. 『천일야화』 는 1000일의 이야기도, 1000개의 이야기도 아니다.

천일야화를 한자로 쓰면 ‘千一夜話’로 1000일하고도 하룻밤 페르시아 재상의 딸 세헤라자드가 이야기를 들려주어 왕의 폭정을 멈춘다는 내용이 큰 줄거리다. 그런데 천일야화를 ‘千日夜話’로 알고 1001일이 아니라 1000일간 들려준 이야기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천일야화』는 세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는 액자식 소설인데, 여러 판본이 있어서 담겨 있는 이야기 수가 다르지만, 아랍어 판본 기준으로 약 300여개의 작은 이야기가 있다. 즉,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짧은 우화는 하루 만에 끝나기도 하지만, 「신밧드의 모험」처럼 일곱 차례 여행길에 나선 경우 한 이야기가 보통 사나흘 이어지기 마련이다.

(좌) <샤리야르 왕과 세헤라자드> (마리 에레노어 고드프리드, 1842), (우) <세헤라자드>(소피 젠젬브르 앤더슨, 연도 미상)

2. 『천일야화』 와 『아라비안 나이트』, 왜 서로 다른 이름이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두 제목은 같이 쓰이지만 구글링 검색을 해 보아도 『아라비안 나이트』가 『천일야화』보다 훨씬 많다. 『천일야화』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페르시아어로 된 『하자르 아프산(Hezar Afsāne)』로 ‘천 개의 이야기’란 뜻이다. 이를 아랍어로 옮긴 『알프 라일라 와 라일라』 필사본 역시 ‘천 하룻밤의 이야기’란 뜻이다. 유럽에 처음 이야기를 소개한 앙투안 갈랑(Atoine Galland) 역시 불어본 제목을 『천일야화(Les Mille et Une Nuits)』로 붙였다. 이후 윌리엄 레인(William Lane)이나 리차드 버턴(Richard Burton) 등은 『아라비안 나이트 오락(Arabian Nights Entertainment)』,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 영어 번역본을 출간했는데 이 책들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오늘날 두 제목 모두 쓰고 있다.

리차드 버턴(Richard Burton)의 번역본, 이종화 제공

3. 『천일야화』는 아랍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천일야화』 전승지도

『천일야화』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많은 학자들은 인도에서 있었던 설화 및 민담을 근간으로 발전되었다고 간주한다. 『천일야화』 의 동물 설화와 비슷한 내용이 불교 설화집 『자타카(Jataka)』 에서 발견되었고, 17세기경 『천일야화』 에 포함된 《세이프 올무룩과 바디 올자말 이야기(The Story of Seyf ol-Molûk and Badî`ol-Jamâl)》 페르시아어 필사본이 17세기경 제작되었다. 이 이야기 역시 인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인도에서 시작한 이야기들이 페르시아를 거쳐 아랍, 이집트, 그리고 18세기 이후 유럽으로 건너갔다. 유럽인들은 번역과정에서 아랍의 이야기를 모아 마음대로 편집하고 덧붙여 오늘날 『천일야화』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신밧드의 모험」이나 「알라딘의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등이 그 예이다.

《세이프 올무룩과 바디 올자말 이야기(The Story of Seyf ol-Molûk and Badî`ol-Jamâl)》 책 중에서

4. 알라딘은 아랍인이 아니다.

아랍뿐 아니라 페르시아, 이집트, 유럽에서 여러 판본이 나오며 이야기가 축적된 탓에 알라딘은 19세기 판본에서는 중국인 혹은 이집트인으로 묘사된 판본이 모두 존재했다. 앙투안 갈랑본에서 알라딘은 중국인 포목상의 아들로 적혀 있다. 이런 이유로 20세기 초까지 알라딘을 중국인으로 묘사한 그림과 삽화가 남아 있다. 디즈니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산업에서 알라딘을 동방의 상징인 빨간색 둥근 모자 페즈(Fez)를 쓴 아랍인으로 일반화 시킨 일이 고작 1세기 남짓임을 알 수 있다.

(좌) 프란시스 브린디지(1898, 뉴욕 퍼블릭 라이브러리 소장)

(우) 레고 알라딘·재스민·지니, 페즈(20세기 전반, 튀르키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소장)

5. 『유옥역전』과 방정환

『천일야화』가 한국어로 처음 번역된 것은 1895년 『유옥역전』이다. 『유옥역전』은 흔히 한국 최초의 근대 번역 소설로 알려졌으나, 『천일야화』를 옮긴 소설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번역가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한글 필사본이다. 『유옥역전』은 메이지 시기 일본의 대표적인 두 가지 번역인 나가미네 히데키永峯秀樹, 『놀랍고도 경이로운 아라비안 이야기開巻驚奇 暴夜物語』 (전 2권, 1875), 이노우에 스토무井上勤, 『全世界一大奇書』(1855)를 바탕으로 삼아 중역된 산물이다.

방정환이 잡지 「어린이」에 1926년부터 1927년 사이 「만고기담 천일야화」, 「알리바바와 도적」(전 3회) 등 4편을 번역, 소개한 사실 또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방정환은 특히 한국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열려라, 참깨!’ ‘열려라, 콩!’ ‘닫혀라, 팥!’으로 번역한 일화도 유명하다.

(좌) 『유옥역전』 표지와 첫 페이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및 이미지 제공

(우) 방정환, 「만고기담 천일야화」 『어린이』(1926)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및 이미지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박물관은 2024년 1월 8일부터 《천일야화의 길》 전시를 진행중이다. 서구 유럽 중심의 이해를 탈피하여, 아시아 구비문학의 백미인 『천일야화』 의 특성과 전승경로, 그 안에 담긴 아랍인의 생활상, 문화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또한 아시아 전통 의상을 입은 주인공을 칠하기, 다국어 번역본 자유 열람 등 다양한 체험을 가능하도록 했다.

참고자료
국립민족학박물관 엮음, 니시오 레츠오 책임편집(최민순), 『아라비안 나이트 박물관』, 시대의 창, 2005.

박진영,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국어 번역 계보와 유옥역전」, 『한국문학연구』, 53, 2017.

賴慈芸, “擔了虛名的蘭氏:『天方夜譚』轉譯底本考(1900-1949)”, 『編譯論叢』, 14(1), 2021.

Ouyang, Wen-chin, “The Arabian Nights in English and Chinese Translations: Differing Patterns of Cultural Encounter”, SOAS, University of London, 2009.

이종화, 「천일야화 번역」 『인류 구전문학의 백미, 천일야화』, ACC, 2023




by 안재연(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사진
A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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