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깔

주목할 아카이브

태양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을 지나 3월 25일이면 인도 대륙은 형형색색으로 물든다. 13억 인도 인구가 거리로 나와 빨강과 노랑, 색색의 물감을 통에 들고 서로에게 색가루를 뿌리는축제를 시작한다.

색의 제전이며 사랑의 축제로 부르는 홀리Holi 축제는 매년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선이 악을 이겼음을 선포하는 신년의례다.

아시아박물관 아카이브. 아시아의 종교 의례. 인도의 홀리 축제는 고대 힌두교 축제지만,
여러 문화권에서도 즐기는 축제가 되어가고 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우주가 탄생과 죽음을 거듭하는 생물처럼 매년 태초의 시간으로 회귀해 생명력을 회복하며 재생된다고 믿었다. 신년의례는 인간이 성스러운 시간으로 돌아가 창조의 경험을 재연하며 동참하는 것이다. *

고대부터 이어져온 홀리 축제에서도 사람들은 온갖 색깔을 서로에게 뿌리며 창조를 낳는 무질서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겨울의 흰 빛 속에 갇혔다가 온갖 색깔이 터져 나오는 봄의 운동에 동참한다.

인간의 망각을 단지 빛의 수용기로 보는 근대 자연과학의 관점과 달리 고대의 지혜나 현대의 물리학은 빛과 눈이 만나 색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폴 세잔은 “우리 뇌와 세상이 만나는 장소”가 색이라고 말한다. 빛이 색이 되는 현상은 인간과 자연이 이어져 있다는 ‘과학적’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 눈이 태양과 같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빛을 볼 수 있겠는가?” **

아시아박물관 아카이브, 이경모의 사진. 전라남도 광양의 산철쭉.

봄春은 생명의 씨앗이 움트는 그 경이로움을 인간의 눈으로 직접 본다는 뜻에서 나왔다고 한다. “보는” 것은 아는 것이고 다시 깊어지는 것이다. 새봄 다시 돌아온 꽃은 겨우내 묻혀 있던 내 안의 깊은 빛을 끌어 올리며 붉게 물든다.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나와 세상을 깊이 보며 한 해의 힘을 길어올리는 때다.

“본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색의 의미는 그것이 우리 앞에 있다는 뜻이며, 그것을 우리가 본다는 것을 뜻하지.
코란에는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이 절대로 같지 않다고 쓰여 있지” ***

참조도서
* M. 엘리아데, 『성과 속』, 한길사
** 괴테, 『색채론』, 민음사
***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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