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만난 ‘현대 도자’

2024 ACC 아시아 네트워크 《길 위에 도자》

‘길’이라는 것은 항상 어디론가 향하며,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4월 18일부터 7월 28일까지 개최되는 《길 위에 도자》는 아시아(베트남, 캄보디아,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경험을 가진 4명의 작가가 제작한 독특한 ‘도자’ 작품들을 통해 동시대 예술을 읽어보려는 시도이다. 또한 아시아에서 시작된 ‘도예’라는 전통 장르가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미국에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특히 각각의 이유에서 시작된 이주가 어떻게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라는 시간과 장소의 간극과 결합하는지 살펴본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담론 활성화를 위해 ‘2024 아시아 네트워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으며, 일부 작품들은 작가들이 조선대학교에서 제작하여 새롭게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도자가 놓인 길을 형상화한 것처럼 공간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 제목 《길 위에 도자》는 이주자의 어느 길에서 만난 문화적 충돌이자 이들이 경험한 다중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주 작가 4인의 ‘도자’로 빚어낸 그 흔적들을 함께 추적해 보자.

다중적 정체성 : 린다 응우옌 로페즈

처음 보이는 작품은 베트남/멕시코계 미국 도예가 ‘린다 응우옌 로페즈’(1981~)의 <털복숭이 > 연작과 직접 앉을 수 있는 의자로도 사용가능한 <영원히(스툴)>이라는 작품이다. 베트남인 어머니와 멕시코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워 사물로 소통하곤 했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가 평소에 일상의 사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데 관심을 갖게 했다.

그는 평소 ‘먼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사물의 관계에 대한 깊은 탐구에서 온 것이다. 먼지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털복숭이> 연작은 흙을 길게 밀어내고 끊어서 둥그런 모양을 만들고, 그것을 이어 붙여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는 ‘자기’에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색감을 만들어내는데, 특히 이 색감과 어우러진 복슬복슬한 질감의 무광 오브제는 시각과 촉각을 자극한다. 작은 모형들이 몽글몽글 뭉쳐있는 모습은 마치 대걸레가 연상되기도 하고, 색색의 털실 뭉치 같기도 하다. 그가 생각하는 먼지는 종종 ‘잊힌 것의 흔적’을 포함하기도 하며, 결국 그것은 오랜 시간을 지나온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영원히(스툴)>은 도기 위에 식물에서 모티브를 따온 형태의 다양한 색을 입힌 자기 조각들을 퍼즐처럼 붙여 완성했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끊임없이 맞춰야 하는 틈이 많은 퍼즐’이라고 비유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가진 여러 정체성으로 인해 자신의 유산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음을 내포한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의 다중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그 흔적으로서, 베트남 직물에서 가져온 유기적 형태와 멕시코 문화인 모자이크 패턴이 혼합된 형태로 드러난다.

집단 트라우마와 치유 : 에이미 리 샌포드

에이미 리 샌포드(1972~)는 캄보디아계 미국 현대미술 작가로 2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캄보디아의 지식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킬링 필드’가 발발하자 딸의 안전을 위해 미국으로 보낸 후 실종되었다. (*킬링 필드는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크메르 루주 정권 때의 대학살을 의미한다.)

<무한한 호, 문화전당로>는 깨진 토기를 이어 붙이고 그것을 실로 감아놓은 설치 작품이다. 이 작품 바로 앞에는 이 작업을 제작한 과정이 담긴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아버지가 살던 곳인 캄퐁치낭 지방의 흙으로 빚은 토기를 깨뜨리고 그것을 합성수지 접착제로 이어 붙인다. 그리고 붙인 토기를 끈으로 묶는다. 그에게 있어 이러한 행위는 아픈 역사적 기억과 그것을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이다. 토기의 깨진 흔적과 틈은 아무리 토기의 파편을 이어 붙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깨지기 전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한 가족, 한 공동체의 붕괴가 다른 지역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연결 짓는다. 그의 작업은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던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감내해야 하는 상처와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공동체적 믿음, 굳은 의지에 대한 것이다.

‘사이’에 위치한 경계자로서의 내면의 형상화 : 세 오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 도예가 세 오(1984~)는 생후 9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이후 어린 시절부터 계속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인종차별을 받곤 했고, 내면의 고독과 분노를 경험했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 음식을 통해 한국 문화와의 접점을 발견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면서 한국의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만드는 형태들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자연과 생태계에서 영감을 받았다.

<자화상>은 도자기 안에 도자기가 여러 개 겹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마치 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탐색하고자 한 시도였다. 또한 미국의 흙과 청자 유약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수제비를 뜯는 것처럼 얇게 늘리는 특유의 방식으로 제작하여 섬세하고 유연하지만, 구멍이 뚫리거나 날카로운 형상이 돋보인다. 이를 통해 비주류로서, 소수자로서 항상 ‘사이(in-between)’에서 ‘경계자’로 존재해 온 자기 내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전통과 파격의 이중적 변주 : 스티븐 영 리

한국계 이민 2세대로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티븐 영 리는 이민자로서의 위치와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그의 작품은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 그사이 지점을 결합하여 보여준다. <독수리구름무늬 매병>은 고려청자의 ‘구름학무늬 매병’의 전통적 양식을 가져오면서도 ‘학’을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로 변환하여 보여줌으로써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문화적 이동과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불완전한 긍지>는 ACC 단기 레지던시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기형은 한국의 전통 ‘달항아리’에서 따왔고 그것의 색은 미국적인 것에서 가져왔다. 특히 도자기 표면에 반짝이는 빨강, 파랑, 흰색의 유약은 미국의 성조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통적 의미에서 ‘도자기’는 결함이 있거나 균형이 맞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도자기는 일반적으로 완벽한 형태와 균형이 중요한 요소인데, 스티븐 영 리의 도자기는 찌그러지고 깨진 형태를 취함으로써 전통적 관습에 도전한다. 가마에서 뒤틀렸거나 깨진 일련의 그릇과 꽃병, 항아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완벽한 것’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보여주기도 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돋보였던 점은 3D 스캐닝으로 만들어진 총 3점의 촉각 전시물이 포함되어 있어 흥미를 끈다. 이는 실제 작품을 본떠서 만들어진 복제물로 자세히 살펴보니 실제 작품과는 재료와 디테일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의 전시 관람을 돕거나, 아이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등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전시보조물로 관람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길 위에 도자》는 도자기를 양식사적 관점에서 살펴보기보다는, ‘도자’를 매체로 작업하는 이주 경험을 가진 작가들의 독특한 변형과 전통 도자 개념에 대한 도전,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유산의 결합을 연결한다.

이는 그동안의 아시아 전통 장르로서의 ‘도자 공예’와는 다른 길을 사유해 보길 권유한다. 더불어 오랜 시간 실용적 목적으로 존재했던 '공예'로서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의 측면에서 현대 도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조망할 유의미한 기회가 될 것이다.

 

 

 

 

 

 

 

by
소나영 (nayeongso@daum.net)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공감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