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를 즐기는 소확행 여행법

내 친구의 특별한 광주 여행

“나 출발한다. 두 시간 후에 광주에서 봐!”

귀한 친구가 서울에서 내려오는 날이다. KTX를 오랜만에 탄다는 그녀에게 인생에 두 번째 광주 여행이다. 10년 전에도 이번에도, 서울에서 광주로 이주해 작가로 살고 있는 나를 만나러 오는 길이다. 친구는 여행을 좋아해서 일 년에 한 번은 가까운 해외에 나가거나, 계절에 따라 국내 여행을 다니곤 한다. 얼마 전 통화를 하며 나눈 대화에서 ‘언제 한 번 광주에 내려오라’라는 말은 어렵지 않게 현실이 되었다. 나는 광주에 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송정 KTX 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바로 지하철역이 보이거든.
지하철은 1호선뿐이니 복잡하지 않을 거야. ‘문화전당’역 개표구 앞에서 만나.”

얼마 후, 우리는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나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부로 연결된 지하철역 출구는 6번이다. 출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친구는 한눈에 담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전당의 규모에 놀라며 이렇게 물었다.

“여기가 문화전당이라고? 그런데 문화전당이 뭐 하는 곳이야?”

우리가 먼저 찾은 곳은 방문자센터다. 방문자센터에는 전시, 공연, 체험프로그램 안내 책자뿐 아니라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ACC한바퀴, 건축투어, 공공미술투어 등 전당의 공간과 역사, 건축물, 공공미술에 대한 주제별 투어를 선택할 수 있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전당의 공간을 경험해 보는 특별투어프로그램도 있었다. 나는 평소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친구를 위해 ‘건축투어’를 미리 신청해 두었다. 해설사는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며, ‘어린왕자’ 이야기로 투어를 시작했다.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글귀처럼 아시아문화전당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광주의 도심 한가운데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장소입니다.”

건축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친구는 ACC를 오아시스에 비유한 의미를 알 것 같다고 했다. 소위 ‘랜드마크’라고 불리는 높이 솟은 건축물들과 달리, ACC는 모든 건물이 지하에 배치되어 있고, 지상은 하늘이 맞닿은 시민들의 공간으로 어디서든 무등산을 볼 수 있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해설사는 이곳이 쉼만 있는 장소가 아니라며 도청 건물에 얽힌 이야기를 덧붙였다. 1930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건축가 김순하 씨가 설계한 붉은 벽돌 건물이 1980년에는 민주화운동 최후의 항쟁지로, 현재는 ACC의 민주평화교류원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문화정보원의 대나무 향이 그득한 대나무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10년 전 그곳이라고?” 친구는 처음 광주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때 공사 중이던 건물을 가리키며 여긴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고. 10년이 흐른 후, 그녀는 바로 그 공간 안에 들어와 있던 것이다. ‘시나브로’라는 말이 떠올랐다. 모르는 사이 천천히 내 일상의 일부가 된 ACC가, 타지에서 온 친구에게는 엄청난 변화로 보일 수 있겠구나.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ACC는 어떤 공간일까?

이제 나도 여행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계절풍을 따라 아시아의 해항도시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거다. 아시아박물관에서 상설전시 중인 ‘몬순으로 열린 세계’를 시작으로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에서 진행 중인 ‘디어 바바뇨냐: 해항도시 속 혼합문화’까지 이어서 전시를 관람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질이고, 일렁이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정말로 먼 길을 떠나 온 느낌이었다. ‘몬순으로 열린 세계’에서는 전시 해설사의 스토리텔링으로 100년 전 과거에 발을 내디딘 듯했고, ‘디어 바바뇨냐’ 전시는 설치미술과 실감미디어 작품의 매력에 빠져 오감이 깨어나는 듯했다. ACC문화상품점 DLAC들락에서는 우리가 보았던 전시 관련 굿즈를 구입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목공 연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녀를 위해 지갑을 열었다.

우리는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카페 진정성으로 향했다. “여기는 밀크티가 맛있어.” 친구는 밀크티를 주문했다. 달콤한 밀크티 한 모금에 눈이 번쩍 떠지며 다시금 에너지가 솟았다.

마지막 전시는 문화창조원에서 진행 중인 ‘길 위에 도자’와 ‘이음지음’ 전시였다. ‘길 위에 도자’ 전시에서는 작은 먼지가 간직한 시간성에 대한 사유가 털북숭이 모양의 귀여운 도자 작품으로 탄생했다는 린다 응우옌 로페즈 작가의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그 밖에도 정형화된 도자 작품의 틀을 깨고, 작가의 인생과 손길이 담긴 작품들을 보며 인생의 우연과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친구는 ‘이음지음’ 전시에서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의 ‘클리나멘 v.9’ 작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80개의 백자 그릇이 푸른 물 위에 떠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공명을 울리는 소리가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었다고. 우리는 가만히 작품을 바라보며 “좋지?”, “좋다.”하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임시 개방된 하늘마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봄날의 한가로운 저녁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저기가 무등산이라고 했지?” 친구가 가리킨 무등산 마루에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예쁘다.” 미소 짓는 얼굴이 발그레 물들었다. ACC, 빛의 숲이 깨어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by
송재영 (tarajay@naver.com)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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