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 아시아 의식주 여행” <아시아 과일 로드>

과일로 풀어내는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 이야기

성군으로 유명한 세종대왕이 수박 하나 때문에 궁궐 내관에게 극형에 가까운 중벌을 내렸다? 오렌지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 한 일등 공신이다? 마피아의 뿌리가 레몬 농장에서 시작됐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엄연히 역사에 근거한 합리적 사실이다. 작은 과일 하나가 품고 있는 재미있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된다. 지난해 <아시아 밥 로드>, <빵 로드>, <커피 로드>를 선보이며 호응을 얻었던 “ACC 아시아 의식주 여행”에서 올해는 과일로 풀어내는 아시아의 이야기 <아시아 과일 로드>를 준비했다. 이번 <아시아 과일 로드>에서는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한 과일의 전파 경로를 찾고, 과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점심 회차에 진행되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운영 시간을 늘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과일 로드를 만날 수 있다.

이번 강연은 음식문화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윤덕노 강사의 안내로 과일바구니처럼 풍성한 강연이 펼쳐진다. 25년 동안 신문기자 생활하며 여러 나라의 음식 문화에 관심을 두게 된 윤덕노 강사는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등 음식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해 왔다. 특히 과일만을 주제로 다룬 『과일로 읽는 세계사』 속에는 과일의 유래와 역사, 문화까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보물 같은 스토리가 담겨있다.

  • 윤덕노 강사 | 음식문화저술가

    “보통 우리가 역사라고 하면 대부분 정치, 경제를 가지고 얘기하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먹고 입는 것도 역사입니다. 그중 하나가 과일인데, 지금은 과일이 너무 풍요로운 시대가 됐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달랐거든요. 심지어 고대 시대에는 어땠겠어요? 과일을 주제로 우리 생활 문화사가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지 그걸 들여다보는 것도 무척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일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교역의 대상이었다. 진귀하고 희소한 과일을 얻기 위해 탐험의 길을 떠나기도 했고, 그 길에서 알게 모르게 역사가 바뀌기도 했다. 과일의 숨겨진 역사를 찾아가는 <아시아 과일 로드>는 3가지 주제, 총 여섯 차례의 강연으로 진행된다. “천국으로 가는 길 오렌지 로드”부터 “복숭아와 사과, 동서로 간 이유는?”, “알고 보니 보물! 포도, 수박, 석류”까지 제목만 들어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맛도 향도 빛깔도 다양한 과일처럼 하나하나 음미하다 보면, 단순히 맛있는 열매로만 알았던 과일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렌지의 고향은 유럽이 아닌 아시아다?

여름에 접어 들어가는 요즘, 마트에 가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과일 중의 하나가 오렌지다. 과즙이 팡팡 터지는 달콤새콤한 맛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과일, 오렌지. 대부분 오렌지를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된 서양 과일로 알고 있지만, 오렌지의 고향은 아시아라는 놀라운 사실! 그 옛날 오렌지는 인도 북부와 중국 남부,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자랐다고 한다. 오렌지가 동양 과일이었다는 것도 의외지만, 더욱더 놀라운 것은 오렌지가 르네상스의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근대 이전만 해도 오렌지는 먹는 과일이기보다는 귀한 약재로 쓰였다고 한다. 덕분에 오렌지를 취급하는 상인은 큰돈을 벌 수 있었는데 이탈리아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메디치 가문’이 그 대표적인 예다. 메디치 가문의 조상이 오렌지 무역으로 부를 쌓았고 이 가문이 피렌체를 다스리는 군주가 되어 르네상스를 이끌었기에, 오렌지가 르네상스의 발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18세기 괴혈병의 특효약 ‘레몬주스’
마피아의 뿌리가 레몬 농장에서 시작됐다?

레몬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도 있다. 18세기 영국 해군이 스페인과의 식민지 전투를 위해 먼 항해를 떠났을 때, 선원들 대부분이 괴혈병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괴혈병은 비타민C 결핍으로 생기는 병이다. 당시 해군 군의관이 괴혈병 치료에 감귤류 과일이 특효라는 사실을 밝혀낸 뒤로, 영국 함대의 선원들은 항해 중 의무적으로 레몬이나 라임을 먹게 됐다. 그렇게 레몬주스를 마셔서 괴혈병을 예방하게 된 영국 해군은 무적의 막강 함대가 되었다고 한다. 레몬이 19세기 영국을 해양강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이다.

영국은 해군과 선박에 공급할 레몬을 대부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수입해 왔다. 레몬 수요가 늘어나면서 19세기 이탈리아는 레몬 특수를 누리게 된다. 당연히 시칠리아 레몬 농장들은 큰돈을 벌게 되었는데 그만큼 부작용도 따랐다. 레몬 도둑이 극성을 부리자, 레몬 농장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 필요해졌다. 이때 나타난 것이 ‘가벨로티’라는 관리인인데 이후 ‘가벨로티’가 이탈리아 마피아의 원조가 됐다고 한다. 마피아 탄생의 계기가 된 과일이 바로 ‘레몬’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배경이다. 작은 레몬 하나에 이렇게 많은 역사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세종대왕이 수박 도둑에게 분노한 까닭은?

바야흐로 수박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대표적인 여름 과일 수박은 사실 우리나라 토종 과일이 아니라 외래 과일이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이며 우리나라에는 고려말에 처음 들어와 조선시대만 해도 찾아보기 힘든 과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3년 기록에 수박 한 통 값이 쌀 다섯 말이라고 쓰인 걸 보면 거의 금덩어리 수준이었던 셈이다.

세종 임금 당시, 그렇게 진귀한 수박을 궁궐 내관이 도둑질했다가 들킨 일이 있었다. 내관은 장형 100대를 맞고 경상도로 유배되는 혹독한 벌을 받았다고 한다. 수박이 단순한 과일 이상의 전략물자로서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어진 세종 임금도 극도로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뒤 차츰 수박을 재배하게 됐지만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수박은 여전히 양반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 어질고 인자한 세종 임금이 분노할 만큼 특별한 과일이 바로 수박이었다니… 올여름 시원하고 다디단 수박 맛이 한층 더 진해질 것만 같다.

다산과 다복의 상징, 민족 과일 ‘참외’

이번에는 수박과 함께 여름철 가장 즐겨 먹는 과일, 참외 맛에 빠져볼까? 참외 속에도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재미난 스토리가 담겨있다. 조선 정조 시대 임금 행차도인 <능행반차도>에는 참외 장식이 새겨져 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중에도 참외 모양의 병이나 주전자가 많고, 고려와 조선의 개국공신 중에는 참외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인물이 적지 않다. 우리 선조들에게 참외는 특별한 과일이자, 상서로움의 상징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참외는 우리나라 토종 과일이자 전 세계에서 오로지 우리나라에만 있는 과일로 예로부터 다복과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 옛날 수박이 돈 많은 양반과 부자의 과일이었다면, 참외는 양반 서민 가릴 것 없이 즐겨 먹던 민족 과일이었다. 양식이 부족했던 여름철에는 값싼 참외로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던, 서민들의 여름 식량 역할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참외의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한국 참외뿐이라고 하니, 더없이 소중한 우리 민족의 과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최성례 | 수강생. 광주 동구

    “그동안 오렌지를 먹으면서도 이게 어디서 어떻게 온 과일인지 전혀 몰랐는데, 오렌지 하나에 이렇게 역사 이야기가 많은지 새롭게 알게 됐어요. 오렌지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겨가면서 후추와 같이 귀한 약재나 향신료로 사용됐다는 게 정말 흥미로웠어요.”

  • 최승미 | 수강생. 광주 서구

    “과일에 대해서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동양과 서양을 가르면서 얘기해주시니까 정말 유익한 것 같아요. 앞으로 오렌지나 수박 이런 과일 먹을 때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ACC 아시아 의식주 여행- 아시아 과일 로드>는 6월 11일까지 아직 4차례의 강연을 남겨두고 있다. 복숭아와 사과, 포도, 석류까지 과일들의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사전 예약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강연 중간 맛있는 과일 시식 타임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몰랐던 과일의 숨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평범한 과일도 더없이 귀하게 다가오는 시간이 될 것이다.

참고: 윤덕노, 『과일로 읽는 세계사』(타인의 사유, 2021)

 

 

 

 

 

 

 

 

 

by
유연희 (heyjeje@naver.com)
Photo
디자인아이엠 포토그래퍼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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