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평화를 노래하다"
2020 ACC 민주·인권·평화 콘텐츠 공모전은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민주·인권·평화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기획된 시민참여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공모전은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웹툰 공모(일반인부)와 포스터 공모(초중등부)로 나누어 진행하였습니다.
웹툰은 민주·인권·평화와 관련된 국내외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포스터는 평화를 표현하는 자유주제로 3월 20일부터 6월 5일까지 모집하였고 분야별로 각 10편의 작품이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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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부문
대상 1명
최우수상 1명
우수상 3명
장려상 5명
포스터 부문
대상 1명
최우수상 1명
우수상 3명
장려상 5명
백서향 꽃
199X년
박태현:제 이름은 박태현입니다. 저는 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이었습니다. 제 양심에 따라 이제 그날의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1980년 5월 19일 광주
부우우웅 덜컹 덜컹 부우우웅 덜컹 덜컹
군인1:현재 광주에서 불순분자들과 북쪽 간첩들이 배합전술을 펼쳐 내란을 일으켰다 이런 광주사태가 전국으로 번지지 않도록 진압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국가의 운명이 귀관들의 어깨에 달려있다! 광주에 도착하면 군인 아니면 적이라 생각해라!!
박태현:군인 아니면 적이라니... 광주 시민들도 있을 텐데...
군인2:전 병력 하차! 다 때려잡아!
퍽퍽 꺄아악 으아아아
헉 헉 헉 헉
군인3:박탠현! 야!!! 야!!! 박태현!! 정신 차려 이 새끼야!!
팍
군인3:뒤지기 싫으면 튀어나가, 어서!
탁
허억...
헉....
으아아
박태현:저는 그날 대한민국 군인이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질렀습니다. 넘어서는 아노딜 선을 계속해서 넘었고 시민들의 비명을 무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비롯한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빨갱이 죽어라 배신자
박태현:아이고, 또 이래놨네... 이걸 또 언제 다 지우냐...
이재훈:어이, 박태현이!
박태현:이재훈 중사? 와 이게 얼마만이야. 전역하고 나서 첨이니까 10년 만인가?
이재훈:티브이에 너 나오는 거 봤다. 전우회에 물어보니까 너네 집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
박태현:그래, 보다시피 이꼴이지. 몇 달째 지치지도 않나봐.
파전 무당산대포집 국밥
이재훈:근데... 도대체 왜그랬냐. 왜 기자들까지 불러서 그딴 이야기를...
박태현:청문회 봤냐? 높으신 군인 양반들이 불려 나와선 한다는 소리가 '나는 몰랐다'라고 하는 거... 우리도 그런 짓을 했잖아. 너는 그 십 년 동안 맘 편하게 살아지디?
이재훈:쳇! 왜~ 왜그랬냐고오! 왜 그랬냐고~ 너만 양심있는 새끼냐? 응?
박태현:뭔 술을 그렇게 마시냐... 정신좀 차려.
이재훈:놔! 이 비샌자 새끼야!!
털썩
이재훈:네가 뭔데! 겨우 잊고 살았는데! 잊고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박태현:잊고 산다고? 그 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죽어도 못 잊고 살아갈 텐데 우리한테는 잊고 살 권리 같은 거 없어... 살아있는 동안 알리고 살거야. 사죄하면서....
이재훈:우리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군인이었으니까.
박태현:명령에 따라서 도대체 뭘 얻었는데? 나는 죄책감 말고는 얻은게 없어.
이재훈:...... 뭘 얻었냐고?
벌떡
이재훈:얻은거 있지!
쓱
이재훈:명령에! 따라서! 죄없는 시민들을 때리고! 죽이고! 그렇게 명령해놓고는 기억이 안 난다는 높은 분들한테서!
휘익
이재훈:이거 하나 얻었다! XX
팍
국난극복기장
이재훈:국난극복? 개소리 하고 있네. 나 그만 갈란다... 잘 먹고 잘 살아, 임마!
박태현:......
수 개월 후...
전주 국박집 수육, 소고기 국밥, 순대국밥 전문
박태현:아주머니 여기 순대국밥 하나요.
아나운서:...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계속해서 다음 소식입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 위원회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 위원 5·18 계엄군 양심선 긴급 기자회견
아나운서:이번 기자회견은 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외었던 예비역 군인이 요청한 것으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 위원회 기자회견 5·18 계엄군 양심선언
이재훈:저는 특전사 출신 예비역 중사 이재훈 입니다.
박태현:응? 이재훈? 아주머니, 여기 티브이 볼륨 좀 올려줘 봐요!
이재훈:저는 1980년 5월 19일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이었습니다.
박태현:그래... 친구야 모두가 침묵하고 뒤돌아선 채 애써 진실에 외면할 때 용기를 내 돌봐준 너에게 자랑스럽다고 하는 것은 희생자들에게 모욕이 될 테니 다행이라고만 해두자 맥서향 꽃을 알고 있니, 그들 모두가 모른 척 하며 돌아선 검은 땅에서 양심을 지키려고 들어 올린 너의 손은 언 땅을 녹이고 제일 먼저 핀다는 백서향 꽃처럼 하얀색이었다.
이재훈:광주 민중항쟁의 희생자 분들께 사죄드리며 저를 포함한 계엄군의 만행을 고발합니다.
박태현:죽는 날까지 우리들은 몇 번의 봄을 마주할 수 있을까. 돌아오는 매번의 봄을 겨울인 마냥 덮어둔 채 살 수 있을까. 희생자들의 봄은 80년 광주의 그 어딘가에 쓰러져 아직도 헤매고 있는데 매화보다 먼저 일어나 피어 제일 먼저 봄을 부른다는 백서향 꽃처럼, 쓰러진 봄을 일으켜 그들에게 돌려줄 다음 하얀 꽃을 기다린다. 남은 봄이 몇번이건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 다음 꽃은 부디 당신이 되어주길 바란다.
남자1:그 날 내가 본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
계엄군은 물러가라! 계엄해제! 물러가라!! 물러가라!! 계엄군은 물러가라!
남자1: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을 자행하는 사람들과 거기에 무참하게 짓밟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퍽! 퍽!
남자1:난 그래선 안된다고 배웠습니다. 사람이 사람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배웠습니다.
퍽! 퍽! 퍽! 퍽! 퍽!
살려주세요.. 제발.. 퍽! 빨갱이 새끼야! 퍽!
남자1:그 순간 나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평화가 깨지고 야만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 시대가, 그리고.....
퍽!
1980년 5월 26일, 전남도청
짝!
누나:박평화! 니가 왜 여기 있어! 도청에 니가 왜 있냐고!
박평화:누나....
턱
누나:밖으로 따라와 박평화. 때려서 미안해. 하지만 평화야. 너 집으로 돌아가. 엄마 생각은 안 해? 너 여기 있으면 군인들한테 죽어. 다들 오늘 밤에 계엄군이 올 거래. 밖에 나오지도 마, 계엄군한테 걸리면 죽어, 죽는다고. 나도 여기서 밥만 잠깐 해주고 다시 갈 거야. 너도 얼른 돌아가. 여기 사람들 다 바보야. 여기서 죽는 거 개죽음이야.
박평화:개죽음이라는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누나는 무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든 단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박평화. 내 이름, 평화. 평화로운 나의 일상. 전 그때가 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걸 알았습니다. 내가 없으면 홀로 남겨지실 나의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 나의 학교. 빛나던 나의 꿈. 돌아가야 할 이유는 많았지만 지금 이 사태를 눈감고 돌아가는 게 그렇게 돌아간 일상이 과연 평화일까 생각했습니다. 그건 내가 알고있는 평화가 아닙니다.
박평화:누나! 왜 자꾸 가래! 누나도 여기 계속있었잖아 나도 있을래!
누나:무서워..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도 나도 다른 사람들도..
박평화:누나 설마 학생들까지 죽이겠어? 나도 살려달라고 빌 거야.. 안 죽어. 알잖아 누나도, 죄 없는 사람들이 자꾸 죽어. 그걸 어떻게 보고 가만히 있어. 사람이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아니라고 말해야지, 한 명이라도 더.. 누나 난... 죽는 것도 무섭고 맞는 것도 다 무서운데. 이게 당연한 일이 되는게 제일 무서워. 내가 알던 평화가 깨지는게 무섭단말야 보고 그냥 넘기면 안되는 일을 무섭다고 넘겨버리는 내가 되는 게 너무 무서워 그러니까.. 울지말고..누나. 응?
박평화: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 같은 최루탄 가스가 짐승들을 내려치듯 사람을 내려치는 그 몽둥이가 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게
무서웠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화가 산산조각 나서 다시 붙지 않을 것만 같아 난 그게 무서웠습니다. 하지 않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게 될까 봐.
1980년 5월 27일, 새벽 2시, 계엄군은 광주 시내로 들어왔고, 그 날 이후 난, 누구의 소식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날 살리려던 누나는 어찌 되었을까요. 40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그 누구의 소식도 알 수 없습니다.
평화는 그 곳에 있었다. -글. 그림 팀 치커리 샐러드
-40년 후
어머니:평화 왔냐. 오늘은 어쩐 일로 어미 얼굴 보러 왔다. 40년 만이다. 저녁 먹기 전에는 올 거라고 매정하게 가버리고 40년이야.
박평화:40년.... 우리 어머니 오래도 기다렸네.. 나 먼저 갔다고 원망 많이 했겠네.
어머니:원망을 왜 안 했겠냐. 널 원망해야 하는지 널 죽인 놈들을 원망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더라. 너는 그렇게 갔는데 그 놈들은 떵떵거리면서 사는 것 보면 세상이 잘못된건가 싶기도 하고...
박평화:그래도 우리 엄마 다 늙었을 때 와서 다행이네. 등짝이라도 후려쳐 맞을까 걱정했는데
어머니:아직 너 후려칠 힘은 남아있어야.
박평화:우리 엄마도 잘 계신 거 봤고, 전 이만 가볼게요.
어머니:더 있다가 가지 왜.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일찍 가냐
박평화:갈게요. 건강하셔. 우리 어머니
어머니:너 가고 내 맘은 40년간 항시 전쟁이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 보면 아직도 맘이 쿵쾅쿵쾅.. 이건 없어지지도 않더라. 그렇게 40년을 꿈에는 안나오나 오매불망 널 기다렸었는데... ... 지 할 일 다 했다고 저렇게 가볍게 가는 것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지 어미 속은 하나도 모르는 놈이여
어머니:... 이름을 잘못 지었어. 평화롭게 살라고 평화라고 지었는데. 평화 지킬거라고 지 한 몸 던지는 놈으로 자랄 줄 누가 알았겠냐.
왜 세상을 바꾸려는 건 다 너같이 부서지기 쉬운 인간들이었을까. 과연 세상이 바뀔까, 그렇다면
종철아! 잘 가 그래이 ... 아부지는 아무 할말이 없대이
어머니:꼭 너희같이 귀한 목숨들이 없어져야만 세상이 바뀌는 건가 원망을 그리도 많이 했었는데, 부스러기같이 약한 인간들.. 그 약한 목숨들 모여서 속절없이 부서지기만 하는 것 아닐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로... 그러진 않을까... 했었는데.... 세상은 아주 조금씩 바뀌더라. 너흰 부서진 게 아니라, 한 몸 바쳐 나라를 위한 땅이 된 거더라. 거기서 뭐가 자라고 하더만 너희가 흙이 되고 또 씨앗도 된 거였더구나. 사람들이 조금씩 물주고 가꾸고 하더니 그 자리에 이제는 조금씩 꽃이 핀다. 평화. 네가 피운 꽃 거기서 잘 보고 있니. 이쁘니까 꽃 보러 왔다고 핑계 대고서라도 엄마 좀 보러 와라. 평화야. 사랑한다.
헌혈의집
간호사: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번 나오시네요. 코로나19 때도 안 빠지시고, 대단하세요!
아나운서:다음 뉴스입니다.
간호사1:다 됐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아나운서: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알려 재판거부 한 전두환씨가...
전두환씨 골프 논란
아나운서:골프를 치는 모습이 공개 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간호사:아하하... 뭐 이런 뉴스가... 선생님 헌혈 기부권으로 준비해드리면 되죠?
삑
이동민:아, 네 ... 그렇게 해줘요. 그럼 가 볼게요. 수고하세요.
간호사들: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간호사2:저분이 그분이시지? 헌혈왕 어르신?
간호사1:네, 맞아요.
헌혈 700회
간호사2:와 대단하시다. 어떻게 헌혈을 700회 이상이나 하셨을까? 저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
헌혈 700회
간호사1:그게 저도 최근 지역신문 인터뷰 보고 알았는데요. 5.18 때 큰 부상으로 출혈이 심하셨는데, 시민분들이 해준 헌혈로 겨우 살아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간호사2:아...그렇구나.
간호사1:그러고 보니 점점 그날이 다가오네요. 함께했던 대학 친구들이 그때 다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그런 흉한 뉴스를 접하시고... 괜찮으실까...
이동민:...... 그날 이후... 세상은 크게 변할 줄 알았다.
전두환씨 골프 논란
이동민:하지만 악마는 살아있었고,
계엄령을 철퇴 하라 전두환은 물러나라
이동민:그날의 외침은 조롱받기 일쑤였고,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산적했으며, 그날의 고통은...
어질 덜썩
이동민:씻기지 않았다.
함께 만든 봄 글, 그림: 김준성
스륵
친구들:야! 이동민! 정신이 좀 들어?!
이동민:어엇? 여, 여기가 어디지?
벌떡
친구1:어디긴 어디야.
친구2:그날의 봄에 광주 병원이지.
친구1:네가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쓰러지고, 출혈이 심할 때, 시민들의 헌혈로 겨우 살아났던... 그날의 봄이야.
친구3:네가 괜찮아졌을 때쯤엔, 우린 다시 금남로로 나갔고, 그 이후엔...
친구2:너와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지.
이동민:...... 그렇게 봄을 찾으려 노력했는데... 그렇게 찾아 해맸는데, 세상은 아직도 많이 차가워.
투둑
이동민:미안해, 애들아. 아직도 막말로 얼룩진 세상이라서...
5.18은 폭동 북한군이 개입 이상한 괴물 집단
이동민:아직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세상이라서...
518진상규명
친구1:정말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스윽
친구1:이렇게 누군가를 살리려고 헌혈하는 네가 살아있는데?
친구3:너는 봤잖아? 5·18 이후 87년 서울 6월 항쟁, 한번 보고 싶었는데... 광장을 수 놓은 사람들의 모습 말이야.
이동민:독재정권을 뿌리 뽑고, 직선제를 얻는 그 순간을 본 네가 있는데... 변하지 않았다고?
친구1:2016년에 1,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게 촛불을 들었어. 물론 이 손도 함께 들었겠지?
친구2:대단해 ...그 커다란 광장에 빼곡하게 사람들이 모이다니...
친구3:이런데도 바뀌지 않았다고 할 거니?
친구1: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외치던 함성은 그렇게 거대한 촛불이 되었어.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봄은 이미 왔으니까. 그리고 넌 그 봄을 누릴 자격이 충분해. 다만 이것만 기억해줘. 그 봄 사이에 우리가 있었다는 걸.
짹짹짹 스륵
이동민:......
아들:어? 아버지? 이, 일어나셨어요?! 아, 그러니까 헌혈 좀 그만하시라고 했잖아요!
며느리:당신 의사 선생님 말씀 못 들었어? 헌혈 때문이 아니라고 하셨잖아!
아들:그, 그렇지만...
이동민:그렇게도 원하던 봄이야...
며느리:네?
아들: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이동민:함께 만든 봄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고맙구나, 애들아... 약속할게...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너희들을 기억할 거야.
ACC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SIA CULTURE CENTER ACI 아시아문화원 ASIA CULTURE INSTITUTE
끊기지 않을 마냥 처절한 비명도 결국에는 끝이 있소
영원히 가시지않을 마냥 진동하는 피비린내도 언젠가 꽃내음에 묻히겠지 그러나 내 안에 언제고 남은 그것들은 무에란 말이오.
그 굉음. 피내음 비명 비명 비명..
그곳에 나는 항상 있소
여자:허억!!!
번쩍
그 전쟁통에서 살아돌아온 뒤로 매번 잊을만 하면 어김없이 그 꿈을 꾸오
헉 허억
그리고 꿈에서 깨면
사박 사박
그 아이가 보여..
사박 사박
꿈결에서조차 이리도 그립고 핏덩이같이 서럽고 또서러운
여자:점례야!
와락
여자:나다, 나 네 동무- 나 여기에 있다 나 여기에 있어-
1943년 전쟁으로 난리통이던 시절이었다.
덜컹 덩컹
조선인 여공들을 모집해 군수공장에서 일을 시킨다던 일본인 치들은 공장이 아닌 어딘가 멀고 먼 곳으로 우리를 끌어갔다
여자:당최 어디까지 가는거여 힘들어 죽겠네..
덜덜
점례:엄니.. 엄니...엄니이...
여자:가엾게도 이렇게 어린 아이도 끌고왔는가..
열너덧살밖에 안된 어린이들을 잔뜩 태운 짐차는 이윽고 지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수없이 자행되는 강간 고문 살인 우리는 그 쓰레기같은 군인들의 욕정해소제로 사용되었다.
여자:옥아! 옥아! 옥이를 내려놓으시오! 여직 숨쉬고 있는 것 안보이오?!
일본인:이 건방진 년이..
여자:아아악!!
그러다쓸모없게 되면 강물에 산채로 흘려보냈다.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이..
말을 듣지 않으면 온몸을 칼로 도륙하였다 그럼에도 '사용해야하니' 죽이지는 않았다.
창년
그들에게 마는 사람도, 금수조차도 아닌 그저 물건이었다
하기사 전쟁이라는 것을 자발적으로 일으킨 것들이다
그치들에게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던 게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다 그들은 우리 전부를 또 짐차에 실었다.
일본인:빨리빨리타!
덜컹 덜컹
또 어디로 가는지 모른채 우리는 돼지새끼마냥 실려갔다.
죽고자하는 시도는 이미 여러번 해보았다.
죽고 사는 것조차 마음 먹은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삶인가?
이 지옥을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사람이다.
사나 죽으나 어차피 이 삶이 지옥이라면
콰악
나는-
쿵
살아서 네들을 저주하련다.
일본인:저년들이 어딜 도망가!
콰악 ?!
여자들:쏘지마 놔줘.. 놓아줘.. 놓아줘 집에 보내줘
일본인:이년들이 아주 미쳤구나? 오냐, 어차피 너희들 싹 다 죽여서 구덩이에 묻어버리려고 하던 참이다.
철컥
일본인:여기서 죽어라
탕탕탕 아아악
여자:안돼! 점례야 보지마! 우리는 도망쳐야해!
으아아아
그때 알았다. 그들은 우리를 지워버리려고 했다는걸
탕 탕 아악
그들은 알고있었다.
점례:언니.. 먼저 가소..
타앙
자기네가 한 짓이
점례:어여가...
사람이 죽고 죽는 그 전쟁통에서조차 비난을 면치 못할 범죄임을
여자:으아아아 으으아아아 아아아 아-
천신만고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더렵혀진 몸뚱이라고 조국의 사람들조차 나를 배척했다
어디에서건 지옥을 만드는건 인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여전히 나를 지우려고 한다
여자:왜? 대체 왜? 니들은 알고있었지? 니들이 아주 못된 짓을 한걸 알고있었던거야. 그러니 기를 쓰고 나를 지우려고 하지. 잠자코 있으면 이 지옥이 또 만들어지지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라믄 또 우리같은 아이들 꼬셔갖고 못된 짓하려고?
인간의 길을 벗어나놓고 하지않은 척,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꽈악
여자:내가 그렇게 놔두지는 않을터이니
1991년 8월 14일
한국정상운제대책협의회
김학순: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입니다.
김학순 선생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공론화 하다
여자: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속에 만물의 형상이 어그러져 변할지언정 결국은 같은 하늘 아래에 이어지는 법이 아니겠소
2007년 2월 15일 한국 출신 이용수 선생님 김군자 선생님 네덜란드 출신 잰 러프 오헤른 선생님 미 하원청문회에서 위안부 참상을 증언하다.
2007년 7월 30일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일본군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통과시키다
이것이 불씨가 되어 세계 각국의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르며, 전쟁 성노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팔랑 팔랑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 수요집회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다
여자:이보오. 나는 알고 있소 내가 여기에 있음은 내가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이란 것을 증명하는 것과 동시에 그네들에게 인간이 될 기회를 주는 것란 걸.. 그때에도 여직까지도 인간이 되지 못한 그네들에게 말이오
여자2:선생님이 겪어온 참혹한 사건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앞으로의 미래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곧 선생님이니까요. 계속해서 선생님들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1992년 1월 8일 수요일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수요집회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영원히 이곳에 있을 것이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1992년 1월에 시작된 이래 단일 주제로 개최된 집회로는 세계 최장 기간 집회기록을 매주 갱신하고 있다.
전범국인 일본은 아직도 진상규명은 커녕 범죄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매주 수요일이면 우리는 묻는다.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된 이 참혹한 반인륜적 사건이 철저한 처벌과 진상규명이 이루어져 인류역사상 다시는 자행되지 않도록 우리가 이 사건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겠느냐고.
기억하라 40년
광주 5.18 민주화 운동 39주년 되는 해, 2019년
독립신문
홍콩남성 대만에서 여자친구 살해 후 홍콩으로 도망
재판결과 겨우 29개월 징역 선고! 홍콩인 찬퉁카이(20)가 대만에서 임신한 여자 친구를 토막살해 후 유기한 뒤 대만으로 도피 하였다. 홍콩법은 영국 관습법에 따라 속지 주의를 채택하고있다. 이에 따라 대만과 같이 해외에서 홍콩인이 저지른 범죄는 처벌할 수 없다. 결국 살해한 여자친구의 지갑에 있던 카드와 현금을 무단사용, 돈세탁을 했다는 협의만 인정되어 징역 29개월을 선고받았다.
대만:범죄자를 조사해야하니 대만으로 보내라
중국:이 참에 중국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조약이 되어있지 않은 국가에서도 범죄자를 소환할 수 있게 법안을 계정 하겠다
홍콩:인정할 수 없다. 그건 홍콩의 자유를 훼손하는 일이다!
홍콩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 추진 발표
*범죄인 인도 법안 타국에서 범죄를 짓고 도망온 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 홍콩은 영국, 미국 등 20개국과 범죄인 인도 협약을 맺었으나 중국, 타이완, 마카오 등과는 인도 협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범죄인 중국 송환 반대
"민주주의운동가들을 대상으로 악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 홍콩시민
시민들이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을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이것은 “폭동”이다. - 캐리 람 홍콩출신 중국행정관
홍콩정부는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공권력을 이용해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한국 국민들에게"
"2019년 홍콩은 1980년 광주가 되었습니다"
2019 홍콩
“민주화 시위에 경찰은 최루가스, 후추 스프레이, 고무탄, 물대포 등을 동원해 시위자들을 체포하는 등 평화적인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고 홍콩시내에는 경찰들이 쏜 실탄과 최루탄에 맞아 다친 이가 속출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촉구하는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80 광주
2019 홍콩
“시위중 경찰의 진압을 피하다 건물에서 추락 하는 사고, 젊은 시위 참가자들의 갑작스런 자살, 2건의 의문사 등이 발생하고 삼천명이 넘는 시민이 체포되었습니다”
1980 광주
당시 신군부는 계업군을 투입해 시위대와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총격해 학살했다.
2019 홍콩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학생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도 발생했고 검거작전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경찰들은 대학, 성당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진입해 시위대를 체포했습니다"
1980 광주
“그러나 우리는 권리는 되찾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더 하나되어 자유를 향해 나아갈것입니다.”
“한국사회는 홍콩인들이 계속 싸워나갈 영감을 주는 미래의 사회모델입니다"
"우리는 한국인들이 먼저 걸어온 민주화의 길을 홍콩시민들과 함께 가주기를 원합니다"
한국인들:경찰력 사용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하라 홍콩 정부는 무차별적 폭력 진압을 중단하고 집회시위의 자유을 보장하라
#한국은 홍콩민주화시위를지지합니다 #레논벽 #Lennon Wall
경자유는 쟁취하여 얻어진 것을 기억하며 연대합니다
#홍콩민주화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홍콩 응원합니다.
한국인들은 홍콩민주화를 지지합니다.
#StandWith Hongkong STAND WITH HONG KONG
체포된 사람들은 석방하라!
시위대에 대한 폭도규정 철회하라!
홍콩의 민주 항쟁을 지지합니다.
홍콩에 연대와 지지를 보냅니다.
2019 홍콩
LET HONGKONG BE HONGKONG
1980년 광주 정신 계승해 홍콩과 연대하겠다! 인권에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1980 광주
결국 정부는 무기한 연기했던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을 완전히 철회하였다.
2019. 11. 24 홍콩 지방선거
결과는 범민주 진영 328석 > 친중 진영 51석
최종 투표율 71.2%로 사상 최고 투표율을 기록하고 사상 처음으로 범민주가 압승
그러나 멈추지 않는 자유를 위한 투쟁
"1980년 광주, 그 때의 광주정신이 지금의 광주를 만든 것처럼 우리도 지금의 투쟁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는 내일의 홍콩을 만들기를 바란다"
“잊혀지지 않는 역사 아래 또 다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다 믿는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윈스터 처칠
꽃이 피듯이 우리도 피어나리라
1913년 6월 4일
쾅!
런던의 한 경마장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웅성- 웅성-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이 경마장에 투신하여 사망하였다.
사람들:경마장에 뛰어들었다고? 이럴수가.... 그게 정말이야? 오, 안 돼...
이에 분노한 수많은 여성들은 에밀리의 장례식장에 모였고, 곧 에밀리의 장례식장은 시위 장소로 바뀌게 된다.
벨라:캐서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몸은 좀 어때요?
캐서린:하하. 나야 멀쩡하지. 그래도 나쁜 소식으로 만나게 된 거라 마냥 기쁘진 않구나. 몇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는데도, 세상은 변함 하나 없다는 사살이 참 무기력하게 만들어.
벨라:...그래도 힘내야 해요.
캐서린:응, 알지. 이럴 때 일수록 더욱 굽히면 안 되니까.
남자:그냥 가만히 집에서 애만 키우면 되는 것을!!!! 감히 우리 집안 이름에 먹칠을 해?! 니가 일을 나가서 돈을 몇 푼 벌어?! 시위? 여성 참정권?! 웃기는 소리! 당장 나가!!
응애애
사악
벨라:아가, 많이 배고팠지? 엄마가...
조용...
쿵!
안 돼. 절대 안돼. 나에게서 모든 것을 뺏어가지 마.
...사망했습니다.
벨라:괜한 욕심이였나 이제라도 집에 들어가 싹싹 빌어야 할까.
가문의 이름 더럽힌 여자를 받아줄리 없을터...
캐서린:벨라! 당장 내려와! 제발 벨라...!!
벨라:이거 놔요!!
캐서린:너를 굽히지 마렴. 네 잘못 하나 없어!
벨라:시위에 나갔다고 집에서 쫓겨났어요. 내 딸은 무능한 엄마 탓에 쫄쫄 굶다가 병으로 죽어버렸구요. 그런데 내 잘못이 아니라고요?
캐서린:당연하지... 너는 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 했어. 네 딸이 사는 미래의 세상을 위해 시위에 참가했던 거고,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 네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고. 네 잘못 하나 없어 벨리. 괜찮아. 그냥 운이 나빴던 거야
절대로, 절대로 너 자신을 굽히지 말렴.
벨라:에밀리의 자살은 아마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남았을 거에요. 에밀리의 장례식장에 모인 수많은 여성들이 그 증거죠.
캐서린:그래, 에밀리의 목숨을 헛되게 해선 안 돼. 우리도 좀 더 급진적으로 다가서는거야. 우리의 목소리를 절대 무시 못하게 해주지.
벨라:캐서린, 내일 전 마을에 제일 큰 정치인 집에 불을 지를 생각이에요.
캐서린:그래,그럼 감옥에서 다시 만나겠구나.
벨라:그래도 같이 농사 지으면서 살자고 했던 약속은 잊으면 안 돼요.
캐서린:과부 두 명이서 농사느 짓자는 그 재밌는 약속? 어떻게 잊겠니-.
벨라:그게 아니죠! 감옥에서 살아서 보자는 소리에요!
투표는 사람의 대표를 뽑는 걸세.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라는 거야. 근데 우리들은? 우리들은 사람도 아닌가?
여성들:여성들에게도! 참정권을 달라!
활활
여성들:달라!
우리가 저들에게 굽히면, 우리가 저들에게 틈을 내보이면,
우리에게도 참정권을 달라!
우린 다시 그들의 인형이 될 거야.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우리가 폭동?! 웃기는 소리!! 우리는 그저 사람 대우를 받고 싶은 거다!
말 하지도 못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인형.
죄수번호 XXXX. 들어가.
벨라:캐서린!!? 일어나요 캐서린!!! 이게 무슨!!
여자:캐서린... 곧 죽을거야.
벨라:무슨 소리에요 그게!?!!
여자:그 소식 들었어?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감옥 안에서 단체로 단식 투쟁 중이였는데, 간수들이 하다하다 강제 급여를 한다는군. 음식이 기도로 잘못 넘어가서 몇몇은 벌써 죽었다던데? 캐서린은 토해내길래 운 좋게 살았나 싶었는데... 내 생각이 틀린 것 같네.
벨라:오 이럴수가... 말도 안 돼! 제발, 제발...! 캐서린 눈 떠요!
대체 몇 명이... 아니 몇 십명이, 아니 몇 만명이...!!! 몇 만명이 죽어야 저들은 우리가 인형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 거지?
우리도 살아있고. 우리도 감정이 있고, 우리도 목소리가 있으며, 우리도...우리도 인간이오-.
똑-
1913년 6월 4일 경마장에 뛰어들어 자살한 에밀리 데이비슨의 죽음으로 많은 영국 여성들이 분노하였고 이로 인해 여성 참정권 운동이 더욱 타오르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시간 여성 운동가들은 각종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운동을 이어왔고 마침내 영국에서 1918년에 30세 이상 여성의 참정권 인정을, 1928년에는 21세 이상 모든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인정하였다.
벨라:캐서린, 그는 참 좋은 동료였어요. 모두에게 친절했고, 지칠때마다 다독여주고 우리를 일깨워주었죠. 그녀의 희생을 비롯한 모든 여서을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서 기쁩니다.
우리는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라이스볼 레인저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
자랑스런 광주 시민증 우리(연대) 800521-xxxxxxx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자랑스런 광주 시민증 모두(화합) 800521-XXXXXXX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광주 광주광역시 동구청장 광주시장
광주광역시에는 특별한 부부가 있다. 생년월일은 물론 고향까지 같은 '우리'와 '모두 부부! 그들이 자랑스런 광주시민이 된지 올해 40년 차다.
우리:매년 5월이면 라이스볼 레인저들과 주먹밥 생일파티를 했는데... 올해는 어떡하지?
모두:글쎄, 코로나19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군. 친구들한테 연락해보게.
Video chat
라이스볼 레인저:안녕~! 라이 하이~ 안뇽~
우리:요즘 어떻게 지내? 코로나19로 많이 힘들지?
주먹밥1:답답하고 너무 힘들어 하지만 대구 시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직 이걸로 부족해 우리 다함께 합체하자.
누미:맞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대구에 가서 도와주면어때? 주먹밥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환자도 진찰하고 봉사도 하고 말야
주먹밥2:GOOD~! 누미는 다 계획이 있구나~
친구들:대구로 GOGO!!
모두:친구들 안녕~ 이렇게 모두 뭉치니깐 80년 오월, 그당시가 생각난다. 라이~하이~
주먹밥3:맞아, 벌써 40년 전이네.. 우리가 광주시민들의 힘으로 태어난 그 때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80년 5월 속으로~
19년 동안의 박정희 정권이 막이 내리고...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신군부와 함께 군대를 이용해 통치권을 갖으려고를 하자, 광주의 대학생과 시민들은 '비상계엄 해제'를 외치며 자유를 요구했다.
시민들:계엄확대 중지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군인:어딜 도망가!
시민:살려주세요..
1980년 5월 18일 조용한 광주에 계엄군이 탱크를 타고 나타나 자유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진압봉으로 무자비하게 때리고 총을 겨누었다.
1980년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리면서 계엄군들이 시민을 향해 일제히 시격을 시작했다. 쓰러진 환자를 성급히 병원으로 이송하는 사람들,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헌혈하는 사람들... 당시 수백 명의 사람이 다치고 목숨을 거뒀다.
시민들:간호사님 저도 헌혈 하러 왔어요.
시민1:아니 이게 전쟁이 따로 없네잉.. 근데 우리가 무신 잘못이 있다고 떼죽음을 당하는 거냐고!
시민2:아이고 이럴 게 아녀, 자자 불쌍해서 어째 쯧쯧... 우리 시민군들 힘내라고 돈을 모아서 필요한 것도 주고 주먹밥이라도 챙겨주자고요.
시민3:아고 배고프재 어서 잡솨~ 기운 내야재잉
몸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줌마와 상인들은 행여 시민군들이 기운을 잃을세라 갓 지은 밥에 소금물을 묻혀서 꽁꽁 주먹밥을 만들었다.
시민1:어 주먹밥이!!!
그런데 갑자기 주먹밥에서 찬란한 빛이 세상을 뚫고 나왔다.
라이스볼 레인저:시민들이 힘을 모으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래그래, 우리 주먹밥 모두 힘을 모으자!!
BANG! BOOM
주먹밥1:매운 맛좀 봐라!!!
군인들:아!! 살려줘어!
주먹밥1:따끔한 맛을 보여주지!
ZZZAPPP
222APS
주먹밥1:자. 어때? 덤벼보라고! 이 안전막은 그 어떤 것도 뚫을 수가 없어
학생들:주먹밥 만세!!!!
BANG!
라이스볼 레인저:합체!
흐흐흐
군인들:으악, 거인이다! 으악!! 빨리 도망가자!!
PUMP!
시민들:와!! 우리가 이겼다!!!
우리: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했어
모두:광주를 시작으로 민주화 바람이 불었잖아. 난 광주가 너무 자랑 스러워
대구광역시청
금호고속
라이스볼 레인저:어, 벌써 대구에 도착했어!
80년 5월에 우리의 공동체 정신으로 민주화를 이뤘듯이 이 코로나도 우리가 힘을 모으면 분명히 이겨낼 수 있어! 물론이지
누미:주먹밥 정신 알지? 광주 오월 주먹밥은 그냥 밥이 아니야. 광주 사람들이 고난을 함께 한 나눔의 실천, 모두가 함께한 대동이고 공동체정신의 상징이지!
라이스볼 레인저:자, 40년 전 우리의 힘을 다시 보여주자!!! 물론이지. 오월 주먹밥 정신은 영원하니까 우리가 할 일은 아주 많지! 코로나 19로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라이스볼 레인저 힘을 보여주자!!!
라이스볼 레인저의 나눔과 공동체 실천으로 대구는 물론, 수도권 등에 확산된 코로나 19는 깨끗하게 종식되고 다시 대한민국에 자유와 평화가 찾아왔다.
자식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시민들의 바램,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올바른 일을 함께 하겠다' 라는 공동체 의식이 라이스볼 레인저를 탄생시켰다.
1980년 5월 이후부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나눔을 실천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불어 살아가는 라이스몰 레인저는 '비단 9명이 아닌, 150만 광주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의 모슴이 아닐까!!
어머니의 편지
덜컹 덜컹
조용
동생:형님! 이거 어찌 할 거요.
형:어쩌긴 뭘 어째 !! 방법이 있나.
동생:몇 환이나 받자고 이런 일 까지 해야되오?
형:각하의 명령인데 별수있나?? 우린 나랏일 하는거라고! 나릿일...
형:말도 안됩니다! 시신을 없애라뇨!!
상관:저대로 놔뒀다간 각하가 곤란해져 ! 알아서 처리해 !
형:...
어머니:얘야. 괜찮니? 아들.
김주열:어머니? 어디계세요?
두리번
남자1:어머니..
번쩍
김주열:헉헉헉. 이상한 꿈이야.
어머니:괜찮니, 얘야?
김주열 꿨나봐요. 어머니. 괜찮아요.
짹짹
남자2:같이 가.
남자1빨리 와. 입학시험 늦겠어!
어머니:잠깐만!
김주열:네? 어머니,
어머니:이거 내가 쓴 편지야.
김주열:편지요?
어머니:그래. 이거 중요한 편지니까 나중에 읽어봐. 늦겠다. 어여 가.
남자1:알겠어요. 나중에 읽어볼게요. 다녀 오겠습니다.
와아 와아
남자2:우와! 우리 학생들도 시위가 한창이구나. 대단하다!
김주열:그렇군요.
김주열:음.. 형, 저..
불끈
김주열:할말이 있는데 고마워. 형
남자2:말안해도 안다. 우리도 시위에 동참하자!
김주열:나라가 혼란스러운데 학교가 무슨 소용이겠어. 나라가 제대로 되어야 우리도 있는거지. 가볼까 그럼!
와아 와아아 와아아 펑!! 펑!!
시민들:부정선거!! 독재타도!! 으아악!!
으윽
저승사자:거기까지. 아파할 필요도 놀랄 필요도 없네. 자네는 이미 죽었기 때문일세. "김주열군" 미안하게 되었소. 나는 저승사자요.
김주열:이게 대체.. 그럴수가..
저승사자:김주열군은 시위 중에 최루탄을 맞아 사망하게 되었소. 안타까운 시대. 의로운 행동이었소.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오. 따라오시오.
김주열:예.
저승사자:저 차를 따라가면 알게 될거요.
김주열:꿈이 아니었구나. 아니었어.. 이런 거 였구나 진실을 덮게 놔둘수 없어.
휘익
김주열:어머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저 흙밥이나 될바에는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립니다. 저는 이래도 여한이 없습니다. 비통하시겠지만 부디 몸건강히 계세요.
어머니편지:주열아, 잘 지내니? 너무 보고 싶구나. 나는 결코 너를 불효자식이라 탓하지 않아. 너무 허무하고 뜻밖의 일이었지만 이 어미는 대견하고 자랑스럽구나. 먼 훗날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내 아들.
그 후 기적적으로 김주열 군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4. 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붉은 피의 대가가 헛되지 않도록 새로운 세대를 바라보아야 할 것 입니다.
엄마:어차피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거야.
내가 시위에 나간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의 목격자 글/그림 남주은
엄마:그 위험한 곳에 꼭 가야겠니? 그러다가 죽은 사람들도 있다며. 그게 네가 될 수도 있는거야!
딸: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남자1:걱정하시는 건 당연하지, 뭐. 마스크, 보안경, 헬멧....... 거기다 우산까지.
여자1:위험하다는 걸 아니까 우리도 이런 걸 준비하는 거잖아. 죽을 수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딸:우리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 어떡하지?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잖아. 난 그게 무서워.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남자1:으음... 한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지?
1980년 광주.
남자1:도로랑 전화선이 전부 끊기고 언론도 통제돼서
꼼짝없이 고립된 상황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어때?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있잖아.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아갈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어. 그때 광주에는 목숨을 걸고 사진과 소식을 바깥으로 전한 사람들이 있었대. 우리한테도 있어. 우리를 보고 기억해 줄 사람들 말이야. 몇 명, 몇십 명이아니야. 수천만 명,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신문 기사나 텔레비전 뉴스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이건 달라. 누구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데다가 완전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지. 우리가 하는 일은 결코 잊히지 않을거야.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며 함께 싸워주고 있잖아.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민주:오빠...! 어찌야스까..
한민혁:금방 뒤따라 갈랑께! 걱정 붙들어매불어. 예비경찰 한민혁! 온몸을 다해 대한민국을 수호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 버스가 광주를 나가는 마지막 버스라는 것을.
5월의 피 글/그림 한다현
경찰대학 과방 *타과 출입금지
한민혁:아따~ 간만이오 곽철 성님.
곽철:그랴~ 요새 일이 바빠가꼬 새끼들도 못본다야.
한민혁:진급허믄 밥 쏘기로 헌거 잊어붓다요?
곽철:워따 고건 또 기가 막히게 기억허네. 조만간 먹드라고
한민혁:아 요새 군바리들이 민간인을 디지게 패고 다닌단디 고거이 참말이다요?
곽철:... 동상 요번에 중학교 올라간담서. 어른들 돌아가셔가고 민혁이 니가 동상들 챙겨야 쓰겄는디 퍼뜩 취직헐 생각이나혀.
고런 쓰잘데기 없는 소문 신경 쓰덜 말고.
살려주세요
엉엉
콱
한민혁:이게 뭐시당가?!!! 이 개XX야!!!
군인1:폭동 조짐을 보이는 학생들을 관리하고 있는데 아새끼가 방해하더군요.
곽철:..고생하셨습니다. 이 놈은 제가 처리할테니 살펴가십시오. 휴 ... 너 이 새끼 나허고 말 좀 허자.
한민혁:꾹-.. 이해가 안 가요. 폭동이라고라? 웃기지 마라 하쇼. 그 여학생 기냥 정치학 전공책 들고 대학교에서 나오는 길이업다디다. 이거시 그 대단한 폭동이다요?
곽철:만혁아. 나가 허는 말 단댕이 들어라. 시방 시국이 어수선시렵다. 오죽하믄 광주를 폐쇄시키고 비상계엄령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라.
한민혁:그게 무슨..
곽철:시방 같은때 니 같은 대학생이 나서서 좋을 거 한탱시도 없시야.
한민혁:행여 시국성토대회 때문에 그라요? 한국은 민주주의 나라요. 신군부 집권과 독재적 행보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 뿐인디 우째 그런 폭력을...
곽철: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하덜말어. 그냥 가만히 자빠져 있어라.
"괜히 나대다가 피 본다."
민간인이 '군인'에게 폭력을 당했지만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도리어 우리의 잘못인 듯이 화살이 돌아왔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군인과 경찰은 시민을 수호하는 것이 맞는 도리다.
우와 탕 턱 퍽 우당탕 퍽
한민혁:군인은.. 국민을 보호하라고 있는 거 아니여?.. 윽... 어째 사람들을 패고 있는건디 미친것ㄷ...
어질
동생:오빠!! 정신 좀 차려보소... 어찌야스까... 흑흑
한민혁:번쩍 ...엉...민주야...
민주:인쟈 좀 정신이 든가? 워메 다행이여... 군인들에게 맞고 있는 오빠를 곽철 형사님이 구해줬어야.. 오빠 우리 시방 광주를 떠야디야.. 난 더 이상 오빠가 다치는거시 싫당께 형사님이 버스표도 줬응께 우리 언능 가세..
이대로 떠나도 괜찮은가. 이렇게 군홧발에 굴복해도 부끄럽지 않은가.
민주:오빠, 안 타고 뭣혀?
성한 몸뚱아리로 어찌 새 역사를 펼치겠는가.
한민혁:먼저 가.
민주:어...?
한민혁:...민주 니 기자가 꿈이라고 했제? 꼭 그 꿈 이루기여! 나가서 지금 광주가 우짠지 모두에게 알려부러! 예비경찰 한민혁! 온몸을 다해 대한민국을 수호할 것을 맹세합니다! 금방 뒤따라갈랑께 걱정 붙들어매불어.
나는 이 곳을 지킬게.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아프게 헤어져야 할까.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플려야 이 5월이 끝이 날까.
우리들의 피가 군홧발 밟히고, 우리들의 함성소리가 총소리에 붇힐지라도 피로 맹세한 민주주의는 독재에 무릎 꿇지 않는다.
우리들의 피는 호수가 되어 이 땅을 적실 것이다.
민주주의의 새벽을 열며...
아니운서:ACC 뉴스입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이 6월 1일 열리며... 제주도내 '전두환 기념 표지석' 잇따러 철거하는 것으로... 6월 4일 오전, 광주 5.18 민주광장에 마련된 전두환 치욕 동상이 시민들의 매질에 파손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민주 기자가 현장에 함께합니다.
Special thanks to 박여민, 박종운(광주사투리재현)
바람에 흩어진 그리움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길 바라며 무르익는 5월 그 어디쯤 수많은 이들의 피를 기억합니다.
ACC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sia Culture Center
평화 화합
평화의 꽃이 피었습니다
세월은 플러가도
사랑도 명예도 뜨거운 함성
앞- 서서 나가니
우리가 꿈꾸는
함께 만드는 평화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세계평화 이루자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적 주먹밥
자유 평화 민주주의
PEACE
평화,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