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판소리를 만나다

그림자는 손에 잡히지도 않고, 때때로 그 모습을 감추기도 하지만 나의 형상을 비추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예술가의 마음의 형상을 비추는 그림자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이 공연은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1797.01.31~1828.11.19)의 분신이자 그림자는 다름 아닌 ‘음악’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시작된다. 음악은 작곡가의 혼이 녹아있는 또 하나의 자아이며 그 안에는 열정, 행복, 기쁨, 희망이 담겨있지만 우울, 질병, 고뇌, 죽음도 담겨 있다. <슈베르트, 그의 그림자>는 슈베르트의 음악과 삶 안에 이 두 가지 다른 얼굴이 함께 녹아있고, 그것이 예술과 인생을 숙성시키는 원천임을 이야기한다.

시작의 설렘이 있는 봄, 송어처럼 활기찬 여름, 아름다움과 죽음을 한 몸에 담고 있는 낙엽의 계절 가을, 그리고 차가운 겨울. <슈베르트, 그의 그림자>는 한 인간으로서, 작곡가로서 슈베르트의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여 그의 삶과 음악적 과업이 날줄과 씨줄로 엮어 진행된다. 바리톤 가수 이응광에게는 슈베르트를 투영시켜 노래와 대사를 통해 당시 슈베르트의 심정을 풀어내고, 소리꾼 이봉근은 21세기 한국에서 노래하는 자로서 슈베르트에게는 공감과 위로로, 관객들에게는 이야기꾼으로 다가간다. 특히 우리의 소리 중 주요 레퍼토리를 들려줌으로써 슈베르트의 리트와 화답하는 전개를 펼치며 이를 통해 슈베르트가 살았던 18~19세기와 현재, 그리고 동서양이라는 공간, 음악은 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고 있음을 피력한다. 여기에 피아니스트 이소영의 연주와 반주로 음악적 깊이를 더하고,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국악이 슈베르트를 통해 연결되는 예술적 결합의 현장을 선보인다.

질병과 싸우며 마왕의 부름을 받고 겨울 나그네로 사라진 슈베르트. ‘음악은 이곳에 소중한 보물을 묻었고, 그러나 그보다 훨씬 아름다운 희망 역시 묻었다’는 그의 묘비명에 적힌 글귀처럼 보물이자 희망인 슈베르트는 묻혔지만, 그는 우리에게 음악이란 분신을 남겨 그 희망이 다시 살아나게 만들었다. <슈베르트, 그의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슈베르트에게 진혼과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그는 우리에게 음악이 주는 힘이 무엇인지 가르쳐줄 것이다.